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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ta è bella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La peccora smarritadi Eugenio Scalfari길 잃은 양의 질문스칼파리 2013년 9월 11일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신문의 7월 7일과 8월 7일 자에 게재된 두 칼럼에서 내가 제기한 질문들에 답변을 해 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가 그토록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장문의 글을 쓰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아마도 길 잃은 양은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칼럼들 속에서 나 자신이 '무신론자'이고 "신을 찾지도 않으며", 단지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이자 다윗 왕 혈통의 유대인인 나사렛 예수의 행적에 오래전부터 깊은 관심을 두고 경탄해 왔다"라고 말했다. 그러고서 한 발 더 나아가 "신이란 인..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Le risposte che i due Papi non hanno ancora dato di Eugenio Scalfari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 1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하는가 -스칼파리 2013년 7월 7일-여름으로 접어든 이번 주에 정계나 재계에는 새로운 소식이 없었다. 마테오 렌치 총리와 그의 반대자들 사이에 사소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내 눈에는 무익하고 소모적으로 비칠 뿐이다. 정말 새로운 상황은 이집트에서 발생하여, 근동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신문의 특파원들과 이런 문제들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그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저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오늘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교황의 회칙( 교황이 교리와 도덕, 규율적 문제에 관해 ..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서문혁명은 교황이 선택한 프란체스코(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 Francesco d'assisi, 1182~1226. 그리스도교의 성인으로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13세기 유럽의 사상,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젊은 나이에 '작은형제단'을 조직하여 청빈, 정결, 복종등을 규칙으로 한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예수의 교훈을 실현하기에 전력했으며, 여기에서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비롯되었다. 모든 생물을 형제라 부르고 산천초목을 자매라고 부르며 그리스도교를 널리 전도하였고, 예수와 같은 성흔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라는 하나의 이름에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많은 의무를 지우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지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았던 성자를 떠올..

시간이 흐르며 선호도가 바뀌는 경향이 있다. 전에 좋았던 것에 소홀해지는 것도 있고 관심 밖이었던 것, 더 나아가 좋아하지 않던 것인데 눈이 가고 손이 가는 것들도 있다. 음식을 꼽는다면 나물이다. 엄마가 늘 잔뜩 무쳐놓는 나물 식탁에 손도 안 대던 시간이 분명 있었는데… 요즘은 가장 그리운 음식이 나물류다.색도 그렇다.내겐 노란색이 선호되어 손이 가고 눈이 가던 색감이 아니었다. 세월호 노란 리본 때문이라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아마 그쯤이었을 것이다. 노란색에 마음이 가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11년이면… 꽤 오랜 시간이다. 노란색이 좋다.확신이 드는 것들이 점점 줄어드는 삶, 글쎄… 아마도… 잘 모르겠어… 가 주가 되는 삶 속에 존재하는 내게… 아마도… 앞으로, 계속, 변함없이 좋아할 것 같다는 강한..

나는 국민학교 세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6년 3월 1일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오로지 국민학교로만 마친 세대는 1983년생까지고 국민학교 시절을 ‘경험’해 본 마지막 세대는 1988년 생이라고 한다. 국민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몇 장면 중 하나가 ‘국군 아저씨께 위문편지 쓰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놀라로 자다. 참 많이도 썼고 답장도 참 많이 받았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기 친언니는 대학교를 다녔다. 우리 언니는 88학번이다. 언니가 입학한 대학의 그 해 건축과는 언니를 포함하여 여학생이 3명이었다. 언니의 과 친구, 선배들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다. 늘 떼거지 남학생들이 우르르 우리 집에 왔었고 국민학생이던 나와도 잘 놀아주었다. 나와 종이인형, 바..

마음이 편할 날이 없는 시간이다.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풍경을 찾아왔지만, 이 멋들어진 풍경을 보는 아침도 한숨이 먼저 나오니… 사는 건 정말 고통의 연속인가 보다…주말이고 주중이고 광장으로 모여드는 한국의 시민들 소식도, 불길이 잡히지 않는 산불 소식도… 한숨을 몰아 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현 시간에 나는 무기력하다. 이 끝나지 않는 부채의식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도 두렵고 무섭다. 할 일이 태산인데… 가장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을 손에 잡는다. 가장 나중에 해도 된다는 것은… 즐기며 하고 싶은 일이기에 그럴 것이다. 마음껏 즐길 수는 없지만 기분이라도 전환하고 싶은 마음, 이것에 몰두하며 피식이라도 웃을 수 있는 요지가 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오래전에 선물 받은 조각보를 ..

2002년 한 여름, 이름도 낯선 이탈리아 북동부 한 시골 마을에 들어섰다. 사랑이었다. 그도 그의 가족도 그의 마을도, 내겐 진정 사랑이었다.2025년 난 이 마을 정식 주민이 됐다. 이십삼 년의 시간, 여전히 그 사랑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책임과 애증이 더해져 농도가 짙어진 사랑이 되었다.지난 15년간 바쿠, 모스크바, 민스크 그리고 암스테르담 그렇게 네 도시를 거쳐 살았다. 이동에 대한 결정은 통보였다.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의 시간이 주어진, 욕 말고는 나오는 게 없었던 그 이동의 목적은 ‘노동‘이었다. 남편의 노동이라 단정 짓고 싶지 않다. 그를 따라 이동했던 내 지난 15년간의 삶도 노동이었다. 지난 15년간 내 직업란은 ’가정주부‘였다. 비록 가족과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기에 그 귀하..

좋은 노래 한곡은 내 기분을 업! 시킨다. 힘들고 짜증 나는 현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좋은 노래 한곡은 이 노래의 배경이 뭘까까지 가게 만들어 그놈에 ‘공부‘를 시킨다. https://youtu.be/ROKDhTBuSm8?si=wGCcZeiU6rwtvRos무슨 연유에선지 스페이스 A의 ’ 섹시한 남자’가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올라와 스페이스 A 모음곡을 틀어 놓고 집안일을 하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한때 나이트에서 좀 놀아본 언니… 그 과거를 숨길 길 없다. 뭐 창피할 일도 숨길 과거도 아니니 하교 후 집으로 들어온 아이 앞에서도 스페이스 A 노래를 끄지 못하고 내입장에서는 세상최고 섹시 댄스지만… 아이 입장에선 슬랩스틱 하는 상태 안 좋은 엄마의 막춤을 췄다. 아이가 박장대소를 하니…. ..

Snowflakes in my yard러시아어를 접하면 가슴이 떨린다. 어쩌면 지긋지긋했을만한데… 나를 조금은 무기력하게 혹은 많이 답답하게 그리고 심하게 좌절(?)하게 만든 언어였는데…허나 ‘나 매우 부족해요’를 ‘나 머리 안 좋아요’를 거침없이 까발리게 만든 러시아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성장시킨 도구가 되었다.나는 러시아에, 벨라루스에 배경을 둔 친구들이 있다. 시간이 흘렸음에도 여전히 애틋하고 항상 그립고 기념일을 챙겨 주고받음에 감사하다. 뜬금없는 안부가 세상 반갑고, 세상 부끄러운 ‘사랑해’를 주고받아도 닭살이 돋지 않는다. 내가 신을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는 이런 ’ 인연‘을 만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2월이 되었으니… 이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차가 된다. 귀한 목숨을 참..

영화 하얼빈을 봤다. 이 영화가 보고 싶어 한국에 다녀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좋았다. 지칠 만큼 지쳐있던 내게… 한없이 버겁고 끝도 없이 암담했던 2024년을 보냈기에… 2025년의 시작은 어찌 되었든 뭐가 됐든 나를 밑도 끝도 없이 행복한 기분으로 올려줄 무언가가 진심으로 필요했다. 1월 1일 비행기로 베니스, 뭰헨을 거쳐 1월 2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엄마집이 있는 포천으로 이동하여 일주일간 난 그야말로 시체놀이를 했다. 엄마와 나 둘만 존재하는 공간에 머물러 본 것이 대체 얼마만인 건지…. 엄마가 해주는 밥으로 삼시 세끼를 먹고 하염없이 그저 자고 또 먹고 또 자고를 반복했다. 행복했다.수원은 내 선배가 사는 곳이다. 결혼하여 정착한 도시다. 내 친형부를 제외하곤 형부라 부르는 유일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