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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재외선거 등록신청 기간 본문


나는 국민학교 세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6년 3월 1일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오로지 국민학교로만 마친 세대는 1983년생까지고 국민학교 시절을 ‘경험’해 본 마지막 세대는 1988년 생이라고 한다. 국민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몇 장면 중 하나가 ‘국군 아저씨께 위문편지 쓰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놀라로 자다. 참 많이도 썼고 답장도 참 많이 받았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기 친언니는 대학교를 다녔다. 우리 언니는 88학번이다. 언니가 입학한 대학의 그 해 건축과는 언니를 포함하여 여학생이 3명이었다. 언니의 과 친구, 선배들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다. 늘 떼거지 남학생들이 우르르 우리 집에 왔었고 국민학생이던 나와도 잘 놀아주었다. 나와 종이인형, 바비인형 놀이를 해주던 그 오빠들이 군에 입대했을 때도 ’위문편지’를 보냈었다. 많이도 보냈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글‘(?)을 쓰게 된 시발점은 ’군인 아저씨‘들과의 펜팔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군인‘은 친근한 존재로 자리 잡았던 거 같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그들을 위문하고 격려하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당현하다는 세뇌 아닌 세뇌를 꽤 낭만적으로 시킨 영리한 방법이었던듯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를 보며 군인의 다른 모습을 봤다. 소설 태백산맥을 읽으며 군복이 주는 위화감, 한 인간을 다른 인격체로 변할 수 있게 만드는 집단의 위력 등을 상상하고 생각했었다.
드라마로 어렴풋이 본 광주의 처참했던 광경을 대학에 입학한 그다음 해 학보사 모임에서 다큐멘터리, 실상이 담긴 현장 비디오로 봤다. 군인들의 잔인성에 참혹해했던 기억이 참… 선명하다. 충격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전시 상황 속 군인은… 내 위문편지 속 달콤하고 친절한 존재가 아님을,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의심했던 시간이었다. 허나 내 20대 시절의 한국은 군인을 공포의 대상 혹은 영웅의 대상으로 삼을만한 여지가 없었다. 하나회를 척결한 김영삼 대통령의 덕이었을 테고… 문화강국을 일찍이 선도했던 김대중 대통령 덕분이었을 테다. 전쟁의 공포와는 거리가 먼 발칙하지만 성숙한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물꼬를 터준, 과학과 문화가 주가 되는 시대를 열어준 탈권위주의자, 반권위주의자 노무현 대통령 덕분이었을 테다. 내가 20대와 30대를 여럿의 나라를 거치며 국외자로 살면서… 쥐뿔도 없지만 기죽지 않고 수많은 다른 국적의 시민들과 자신 있게 어울릴 수 있었던 건, 내 국적 한국을 단 한 번도 부끄럽게 생각해 본 적 없이 설치고 나대며 살 수 있었던 건 김대중과 노무현의 시대에 청춘을 보낸 덕분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래서 정치가 중요한 것이다라는 의견에 몰표를 던진다.
2013년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자리를 잡으며 무의식의 공포감이 작동한건 어린 시절 세뇌된 소련의 이미지… 바로 군인들의 나라라는 것이었다. 그건 베비라쿠아씨도 크게 다를 바 없었는데 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공산당. 이탈리아 파시즘의 프로파간다를 통한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공산당에 대한 실체 없는 공포심은 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작동했다. 하지만 자리를 잡기 시작한 그해를 넘기기도 전, 우리 부부는 모스크바와 사랑에 빠졌다. 아기띠로 세레나를 품 안에 넣고 무던히도 돌아다니며 만난 모스크바의 모든 군인, 경찰은 친절했다. 5년이 넘게 살았던 우리의 모스크바 집 바로 근처 유명 구단의 축구 경기장이 있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살벌하게 중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우리 동네를 에워싸고 통제를 했다. 중무장된 우락부락한 그들의 외모와는 상반된 이상한 귀여움에 웃음이 나온 경험도 있다. 12시 점심시간을 시작으로 오후 3시까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거주지역은 늘 조용했다. 어린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무언의 지역(?) 룰이었던 것 같다. 막 잠이 든 아이를 침대에 뉘우고 나도 조금 쉬어야지.. 하며 긴장을 풀던 시간은 대략 오후 2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 버젓이 현관벨이 있음에도 대문을 손으로 두드리는 ’긴급 상황‘이 일어났다. 깜짝 놀라 깬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놀란 나는 급하게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어림잡아 190cm가 넘는 키의 중무장한 군인 경찰이 서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당신 미친 거냐고 지금 이 시간의 이 동네는 개미도 다 자는 거 모르냐고 대뜸 고래고래 소리치는 나에게 말 그대로 얼음 자세로 서 눈만 꿈뻑꿈벅 대는 그를 세워둔 체, 옆 동에 살고 있는 친구 올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전화를 바꿔주고 상황 설명과 함께 짧은 대화를 마친 그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이즈비니찌에(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퇴장했다. 잠시 후 1층 아파트 관리실 직원과 올가가 왔다. 축구광팬 훌리건들이 축구장 폭동(?)을 모의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그의 거주지가 우리 아파트 주소였다고 한다. 그들의 출동에 그 축구광 훌리건이 잡혔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집으로 와 소동을 일으킨 소문은 무성하게 퍼졌고 한집 건너 한집 서로가 서로를 다 아는 이웃들, 특히 한국 여자와 이탈리아 남자가 아기 하나를 키우며 살고 있는 집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던 상황에 그 군인 경찰 무리는 곤욕을 치르며 퇴장했다고 했다. 잠이 덜 깬 쏘냐를 둘러업고 온 올가와 잠이 다 깨기도 전 울다 지친 세레나를 둘러업고 있던 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그저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해프닝을 겪으며 군인들이 참 귀엽고 친절하다고 말하는 내게… 올가는 정색을 하며… 전시 상황의 전시 상황에 준하는 시절에 군대를 군인들을 또렷이 기억하는 그녀는 ’동의 하지 못한다’ 단호하게 말했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을 보니… 군인을 혹은 경찰을 그리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집단이구나를 상기했던 시간이었던가보다.
2024년 12월 3일 한국에 계엄령이 내려졌다.
2025년 4월 4일 계엄령을 선포한 내란 수괴 우두머리가 파면되었다.
개인적으로 ’시민 저항, 군경 소극적 수행으로 해제되었으니, 중대성 판단에 영향 없음‘이라는 탄핵 선고 판결문 구절에 가장 크게 마음이 간다.
공권력… 그 방어하고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폭력 지휘권을 잡는 지도자를 어찌 선출해야 하는 것인지… 우린 어쩌면 또 이렇게 고되고 힘들게 배웠나 보다.

재외 국민도… 선거를 꼭 해야한다.
선거를 하러 가는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선거를 꼭 하는 우리가 결국에는 이긴다…
똑같은 사람을 또… 두 번이나 찍으러 간다.
왜 내가 지지하는 이들은… 이렇게도 어렵게 가는 건지…
어렵고 힘들게 가는 그들을 보는 나도 참.. 힘들다.
그래도… 온 힘을 다해… 간절한 마음으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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