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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2.30 전초전
Life/Belarus2019. 12. 30. 14:09

처음으로 비행기라는 교통 수단을 탔던 기억이 난다. 지금으로부터 21년전인 1998년이었으니 선명하게 남을 수는 없는 기억일테다. 김포공항 - 뉴욕 JFK 공항 왕복 노선이었다. 처음 비행기라는 것을 타는, 맑고 또랑또랑하다의 의미가 부여된 '낭랑 18세'의 소녀에게 혹여 발생 가능하게 될 사건 사고에 대한 염려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기억만이 어렴풋이 스쳐지나 간다. 나는 그 첫 비행기 탑승을 시작으로 지난 21년간 쉼없이 비행기를 탔다. 직업군에 '비행'이 필요 항목으로 포함된 이도 아니고 어디든, 아무때고 이동수단 요금으로 비행기비를 지불하는 것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형편의 사람도 아닌 내가 이리된건 그저 역마살이라는 이 액운과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무논리 무맥락으로 결론짓는다.

장거리 이동 수단으로 이용되는 비행기를 타며 겪게될 많은 사건 사고 중 '수하물 분실'의 소재를 이야기하려 장황한 서문을 늘어 놓는다. 솔직히 지난 21년간 내가 몇번이나 비행기를 탔는가 혼자 자문해 봤다. 공책에 몇년도에 내가 여기서 저기를 갔었지를 써가며 확인하지 않는 이상 모르겠다. 몇번이나 탔는가의 통계 수치가 선뜻 나오지 않을 만큼 탔지만 수하물 분실이라는 사고와의 만남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삼사일을 넘기지 않은 선에서, 내가 머물고 있는 곳까지 안전하게 도착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이런 젠장할'을 외치고 크게 액땜하나보다며 이 일이 내 안위와 운을 위한 푸닥거리(?)라 강제 치부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크게 분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건 공항 수하물 분실센타 직원들의 왠지 모를 믿음직스러운 언행과 내가 그간 이용했던 항공사들의 알 수 없는 신뢰감 때문이었던 듯 하다. 지금은 한 나라에 여러 항공사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소위 말하는 저가 항공사들의 대거 출현이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 '국적기'라 불리는 대표 항공과 그에 더불어 땅덩어리가 큰 나라는 주요 도시의 이름을 걸고 운행하는 항공사가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보니 아마도 내 머리속에는 비행기=국적기라는 인식이 강했던 모양이다. 내 수하물이 분실 되었지만 내 고국이, 미국이, 호주가, 일본이, 독일이, 프랑스가, 영국이, 이탈리아가 찾아주겠지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근거 없는 신. 뢰. 작. 용. 이 자동적으로 작동 되어 나를 안심 시켰던 모양이다. 이 소위 말하는 강대 선진국의 이미지가 무지하다 못해 순박한 한 인간의 뇌에 어떻게 세뇌되는지 내가 몸소 그 한 예시가 된다. 동전의 양면이 존재하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지금도 위에 나열된 나라들에 대한 내 최소한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없는 이유는 내가 그간 대면한 그들의 공항 그리고 항공사와 날 서 직면하게 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후 만난 아제르바이잔 항공, 터키 항공, 러시아 항공외 다수의 공항과 항공사와도 이를 빠득 빠득 갈만큼의 험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가방이 도착하지 않은 적도 물론 있었고 공항 직원과의 계획에 없던 반갑지 않던 조우도 있었지만 그저 지나보니 웃어 넘길 수 있던 추억으로 자리를 잡았나보다.

어찌보면 내 망각의 늪은, 내게 긍정 작용을 하는가보다..........

지난 8월 민스크에서 시댁 이탈리아 이동노선 빌니우스-뭰헨-트리에스테. 종착역 트리에스테에 도착하니 내 짐은 도착을 하지 않았다. 빌니우스-뭰헨 구간 이용 노선 에어 발틱은 문제가 없이 통과 했는데 뭰헨- 트리에스테 환승 구간 루프트한자 항공이 문제였다. 어처구니 없이 기운 빠지는 상황임이 분명한데...... 화를 낼 기회는 아무도 주지 않는다. 일단 트리에스테 공항 수하물 분실센타 직원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 하며 나를 안정시켰고, 지금은(대략 밤 11시경으로 기억된다) 전산 상으로 수하물 위치 상황이 불가 하지만 내일 아침 9시 이후 모든 정보가 확인 되니 걱정 하지 말라며 나를 위로 시켰다. 필요 기재 사항을 모두 기입하고 내일 중으로 전화가 갈테니 염려 말라 확인 위로를 주는 그녀의 따뜻한 언행은 순간 심히 당황한 내 마음을 일순간에 안정시킨다. 혹시 내일 연락이 가지 않으면 이곳으로 전화를 넣어 수하물 분실 번호를 입력하면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다 알려준다. 내일 이 문제가 해결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부정적 정보 인식은 순식간에 입력되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의 말과 행동은 역경(?)따위는 어렵지 않게 극복 될 수 있으리....... '희망 고문'이라는 곱지 않은 이 단어를 희석 시킨다. 내 짐은 3일 후 도착했다. 전화를 여러번 넣으시며, 여러번의 '젠장할'을 외치신 우리 시아버님께는 죄송한 마음 한이 없지만 집으로 도착한 내 짐에 붙어 있던 이 노란색 딱지는 날 그저 웃음 짓게 한다.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내 망각의 늪은 이때까지지 싶다.........

이탈리아에서 민스크로 돌아오는 경로는 베니스-키예브-민스크 노선이었다. 민스크는 대도시 국제 공항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 이유에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이동경로를 이리저리 실험중이다.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갖고 한 예약이었음은 사실이다. 내 개인적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불안한 시국속에 핑크빛 미래만을 꿈 꿀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이것은 편견이라는 겹을 입힌 내 개인의 의사다. 여러 사정들로 인하여 (솔직하게)어쩔 수 없이 선택한 노선이었다. 시작부터가............ 그랬다.

출발 이틀 전날, 예약한 우크라이나 항공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내용은 "일정이 불가피하게 변경되어 귀하의 항공 탑승이 불가하게 되었습니다. 혹 하루 전날로 스케줄 변경이 가능하시면 비행기 좌석예약이 가능합니다. 불가 하시면 원래 스케줄 다다음 날 좌석예약이 가능합니다"였다. 우리는 세레나의 입학식 날인 9월 2일 월요일 전에 도착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기에 8월 31일 토요일 일정 즉 하루 전날의 스케줄을 수락했다. 마지막까지 빨리빨리의 급한 일정에 시달리며 나는 물론이지만 시부모님과 베비라쿠아씨 또한 긴장에 연속된 시간을 보냈다. 베니스를 출발하여 키예브공항에 도착하니 내 티켓에 문제가 있다는 공항 환승데스크 직원의 전달 상황을 듣는다. 어처구니가 없던 본질의 이유야 사전 공지가 없던 '내 티켓이 발권이 아닌 대기'라는 명백한 사실이었지만 이 참혹한 사실을 전달하는 이의 자세는 참...... 너무도 야박했다. 그녀의 불친절한 태도와 말투로 전달된 사항은 "딸아이의 이름으로 발권된 티켓은 유효하나 당신의 이름으로 발권된 티켓은 대기니 탑승구 앞에서 미탑승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거나 그것이 싫으며 오늘 공항에서 보내고 내일 밤 비행기를 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확정된 일정이 아니니 기다리세요" 였다. 내 분노의 게이지가 상승을 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당신은 항공사 직원이 아닌 공항 직원이니 이 사항에 책임자가 될 수 없음에 나는 항공사 직원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말하니 그녀가 답했다. "우리 공항내에는 우크라이나 항공 사무실이 없습니다. 원하시면 공항 밖으로 나가서 사무실을 찾길 바랍니다. 다만 당신은 우크라이나 비자를 소유하고 있습니까? 우크라이나 비자가 여권에 없으면 입국이 불가 합니다" 

일단 이 사람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라는 사실을 상기 시키며 나의 분노 게이지 상승 속도를 조절했다. 여기서 터지는 분노는 아무런 득이 없다. 내 감정의 기복이 심히 움직이고 있음을 감지한 건...... 내 아이 세레나였다. 조용히 내 옆에 서 내 허벅지를 두 팔로 안는 아이를 보며....... 그녀를 향한 응징(?)의 칼을 집어 넣는다. 그 직원이 말한 탑승구로 발길을 돌리는 길에 길을 잃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것 까지는 머릿속에 입력을 했는데 탑승구 번호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어느 탑승구로 가야 하는지 모르니 탑승구 번호를 알려 달라고 물었다. 그리고 인터넷 연결이 필요하니 와이파이 번호도 알려 달라고 청했다. 이 안내 데스크 공항직원은 내 티켓을 확인하며 좀 전에 1층 환승 데스크 직원이 전달한 내용과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 다만 그녀의 전달과정 속 태도와 말씨가 달랐다. 그녀와는 무관한 이 상황을 안타까워 하며 미안해 한다. 한순간...... 내 날선 감정이 무뎌짐을 느낀다.............

그녀의 작은 위로를 받고.......탑승구 앞으로 가 탑승 대기 의자 맨 앞 줄에 앉아 상황을 지켜본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탑승구 데스크 항공사 직원들이 속속히 도착했고 탑승 인원들이 하나 둘 줄을 섰다.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인터넷을 연결하고 베비라쿠아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우리 부부의 대화 내용을 탑승구 항공사 직원들이 듣도록 이어폰 연결을 하지 않은체 통화를 했다. 분노의 게이지는 뜻하지 않게 베비라쿠아씨에게서 터졌다. 지금 당장 본사 직원과 통화하고 메일 내용과 다른 현재 상황 조치에 대해 항의 하겠단다. 대화 내용을 듣고 있던 항공사 직원들의 당황하는 기색이 보인다. 베비라쿠아씨의 전화를 기다리며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지금 이 상황이 비단 나 하나만이 아닌 여러 탑승자에게도 일어난 일인 듯 싶었다. 대부분 러시아어를 하는 탑승 대기자들이 항의를 하기 시작했고........ 러시아어도 영어도 서투른 중국인(으로 보이는) 학생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자신의 상황을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를 섞어가며 소심하게 질문을 하는 상황이 보였다. 내 분노 게이지가 엉뚱한 계기로 폭팔을 했다. 상황을 함께 지켜보던 세레나가 내게 말한다. "엄마! 저 아저씨(항공사 직원)가 저 한국사람처럼 생긴 언니 오빠들한테 바보래. 왜 바보야? 바보같은거 한거 없는데? 그냥 뭐 물어보는데? 근데 빠루스끼(러시아어) 잘 못해서 그러는거야?" ................................................................................................................................... 때마침 베비라쿠아씨에게 전화가 왔다. 본사와 통화했고 발권자 명단에서 탑승 2시간 전, 내 이름이 대기자로 변경된건 항공사 책임이니 책임을 물을 각오를 하라고 했단다. 예의 상실, 직업의식 상실을 통렬히 언행으로 보인 아까 그 (아저씨) 항공사 직원에게 가서 내 티켓을 내밀며...... 나는 여전히 대기자입니까?를 물었다. 그는 깊은 한숨, 무례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있으니 가서 기다리세요"

"당신이 이곳 책임자 입니까?"

"저는 책임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우크라이나 항공사 소속 직원입니까? 우크라이나 항공사 직원복을 입고, 대기자 명단으로 예고 없이 떨어진 이들에게 일일이 답변을 하고 있는데 책임자가 아니라고 하니 당황스럽습니다. 그럼 당신이 알고 있는 지금에 사태를 책임져야 하는 책임자에게 전달하세요. 우크라이나 항공사 직원복을 입고도 무례하고 책임감 없는 언행을 일삼는 당신과 당신들의 실수와 오류로 오늘 비행기를 타지 못함으로 발생 될 내 모든 문제에 대해 법적으로 그리고 최대손해배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내 생각보다 내 목소리는 매우 컸던 듯 하다. 순간 꽤나 시끌벅적했던 그 공간에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앞에 나와 세레나의 여권을 두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나는 결과적으로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대기자 중 내가 유일한 탑승객이 되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하고 저주를 퍼붓던 2명의 러시아권 여성들도, 쭈뼛쭈뼛 원하는 바를 말하지 못했던 3명의 어린 중국 학생들도 결과적으로는 차선책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선택받은 자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동승자 어린이 세레나의 티켓이 탑승자 티켓이었기에 어린이의 엄마에게 첫번째 선택권이 주어진 것이라 자위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화가 났고 또 화가 났으며 계속 그리고 계속 화가 나고 또 났다.

민스크 공항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세레나의 비자가 말썽이었다. 두 세번의 전화 연결, 베비라쿠아씨 회사 담당 직원과의 연결, 민스크 공항 여권 통과대 직원의 상사 호출을 거쳐........... 탑승객 중 가장 늦게 짐찾는 곳에 도착해보니........ 세레나의 이름으로 부친 짐이 도착하지 않아 있었다. 우리를 포함하여 한 무리의 중국인 유학생들의 짐도 도착하지 않았고 여럿의 학생의 가방은 가방 바퀴가 모두 부서져 도착해있다 망연자실 나에게 하소연도 한다. 20명 정도의 중국인 유학생 무리 중 유일하게 러시아어와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들을 나홀로 모두 상대하고 있던 수하물 분실 관리 직원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그 어떤 기대도 접는다. 

우리 짐은 5일만에 도착했다. 짐을 찾으러 공항으로 직접 가야하는 수고도 포함 되어 있었다. 짐을 찾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기 바로 전까지 베비라쿠아씨는 30여통의 항의 혹은 문의 전화와 20여통의 메일을 보냈다. 집요한 그의 성격으로 그는 그만의 '화가 매우 났음'을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의 발발, 세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난 12월 20일 금요일 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수하물 도착 지연에 따른 책임 비용 수령함, 그 보상금액은 50$. 메일을 받고 알려준 절차를 밟으려 사이트에 접속하니 'error application'. 베비라쿠아씨는 꼭 이 $50를 받아 내겠단다.............. 나는 대략 여름쯤, 휴가비에 보탤 수 있게 수령가능 할 것이라 비웃는다. 이 수령금액에 당신의 위로금을 보태어 나도 '샤넬 빽' 한 번 들어 보자 농을 보낸다. 

내 새터전 민스크에 도착하기 위해, 도착 과정에 겪은 이 모든 일을 난 전초전에 비유하려한다. 

전초전의 사적적 의미는 '군사용어로 본격적인 전쟁이나 경기 따위가 시작되기 전에 치르는 작은 경쟁이나 싸움. 대게 적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벌인다'로 정의 된다. 큰일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에 그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나는 특수한 작전을 수행해야하는 군인이 아니다. 나는 특별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비범한 인간도 아니다. 내 민스크의 삶이 경쟁이나 싸움과는 무관한 일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렇기에 또다시 새로이 시작되는 새로운 터전.... 내 민스크 생존기의 첫 불운의 사건이 전초전이라 단정 지을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전쟁터 혹은 경기장에 비유되고 싶지 않은 내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할 뿐이다.

하지만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던 초입길부터 생소하게 느껴지는 많은 지금의 순간은, 나의 하루 하루는 나를 녹초로 만든다. 허나 나는 안다...... 전초전이라는 이 무시무시한 단어를 사용했던 이 시간도, 현재의 한숨짓는 사건들도....... 분명 먼 미래의 훗날에는 날 웃게 만들 추억의 이야기가 될 것임을........

나는........ 'We do hope that you will leave upon the mind only positive impressions.' 이라 전하는 Costomer Relation Manager Alina Smymove의 이 의사 전달을 순수하게, 진정성으로 받아 들이려한다.

내 망각의 늪 혹은 착각의 자유의 그 긍정 작용의 효용 가치는 분명 높다.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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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벨라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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