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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ta è bella
My days in Cividale 2025 본문

2002년 한 여름, 이름도 낯선 이탈리아 북동부 한 시골 마을에 들어섰다. 사랑이었다. 그도 그의 가족도 그의 마을도, 내겐 진정 사랑이었다.
2025년 난 이 마을 정식 주민이 됐다.
이십삼 년의 시간, 여전히 그 사랑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책임과 애증이 더해져 농도가 짙어진 사랑이 되었다.
지난 15년간 바쿠, 모스크바, 민스크 그리고 암스테르담 그렇게 네 도시를 거쳐 살았다. 이동에 대한 결정은 통보였다.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의 시간이 주어진, 욕 말고는 나오는 게 없었던 그 이동의 목적은 ‘노동‘이었다. 남편의 노동이라 단정 짓고 싶지 않다. 그를 따라 이동했던 내 지난 15년간의 삶도 노동이었다. 지난 15년간 내 직업란은 ’가정주부‘였다. 비록 가족과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기에 그 귀하고 행복했던 시간에 대한 가치를 매길 수 없다 말할지라도, 내 청춘의 시간, 단 한 번도, 상상은커녕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직업인 ’전업주부‘로 산 지난 15년의 시간이 가끔은 날 한없이 초라하게 한다. 허나 나의 떠돌이 삶에서 얻어진 교훈, 배움, 추억과 인연이 차고 넘치니 내 직업란에, 그저 명함에 올릴 타이틀에
연연하는 내 허영과 욕심 그 욕망의 불꽃은 끄련다.
끄는 것이 맞다. 그래야 함이 옳다.
슈퍼우먼, 원더우먼으로 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떠나온 내 고국이었다.
내 보금자리를 만드는데 10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남편의 고국, 그의 고향 마을로 돌아왔기에 그저 쉬울 거라 믿었다. 어쩜 그저 그리 믿고 싶었을 것이다. 남의 손을 빌리고 싶은 게으름에 대한 기대였을 것이다. 그래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며 지난 10개월을 정신없이 보냈다.

지난했던 과정 중엔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 그렇지만 결국, 내 열쇠를 갖는 날이 왔다. 길었던 집공사가 끝나고 대충 필요한 가구도 들어왔고 짐 정리도 대략 마쳤다. 마침내 내 공간으로, 우리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입주가 완료되었다.
어제는 마을 경찰이 찾아와 거주 확인까지 했다. 깜짝 놀랄 일이지만 이곳 프리울리주 치비달레 마을은 시청에 거주 등록을 하면 지역 경찰이 찾아와 실제 거주인 확인을 한다. 그들의 방문조차도 반가웠으니 진정 헛웃음이 났다.

내 욕망의 열차가 멈추는 곳. 보물 다루듯 책장 정리를 가장 먼저 하게 되었다. 지난 16년간의 떠돌이 삶에서 가장 날 괴롭힌 건 책정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 읽은 책들은 시댁에 그저 차곡차곡 쌓아두고 새로 산 책들은 그때그때 머물던 거처에 모아두니 어디에 무슨 책을 뒀는지 알 길이 없어 애를 먹었다.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책장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좋다. 행복하다.
2024년 12월 첫 주 인터나지오날레에 오른 기사였다.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읽었다.
이 작은 시골마을 시립 도서관에 앉아 읽을 고국의 소식으로 전혀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다. 아무도 없던 구석진 공간이었음에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한숨이 연이어 나오던 기억이 선명하다.


2025년 3월 중순이다. 해결된 것이 많지 않다.
뉴스를 보는 것이 힘들다.
이렇게 내 이성을 마비시키는 문제에 내 애를 써야 한다는 것에 회의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계속되니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다른 방도가 없다. 용서도 없고 자비는 더더욱 없다. 포기는 결코 안되고 더 이상 이해해 보려 애쓰고 싶지도 않다.
윤석렬의 파면, 김건희 구속 그것이 맞다. 그것이 옳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게 맞다. 그래야 한다.

단단해지고 싶을 때 찾아보는 드라마가 몇 편 있다.
인생 영화, 드라마를 손으로 꼽기엔 지난 이십여 년간 한국은 엄청난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었다. 영미 드라마를 좋아하고 찾아보던 시간이 있었지만 요즘은 틈이 날 때 무조건 한국 드라마를 본다. 영미 드라마와 멀어진 시간을 아쉬워하기엔 열 번을 봐도 새롭고 스무 번을 봐도 정말 좋은 한국 드라마가 너무 많다.
청소년 시절 본 드라마 모래시계는 어쩌면 내 인생의 행로를 결정지어 주었다. 너무 많이 삐뚤어지지 말라는 메시지에 매우 명료한 지침을 주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시기에 본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은 남은 중 후년의 삶도 삐뚤어지면 안 된다는 지침을 준다.
드라마를 다큐로 받지 말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역사 드라마를 단순한 멜로로 받을 수만도 없다. 그래도 애절한 사랑 이야기 그 서사가 좋으니… 난 여전히 낭만주의자인가 보다.

치비달레에서의 내 삶이 진짜 시작됐다.
살집을 찾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가족이 가까이 있다.
동네 도서관과 헬스장 그리고 세레나의 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도 시작되었다.
아이는 어느 정도 학교 생활에 적응해 간다. 집으로 서로를 초대해 반나절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다.
베비라쿠아씨의 새 일터에는, 새 동료들과 상사들에게는 지난 16년간 주재원의 위치로 그를 괴롭게 했던 요소가 없다.
허나 한없이 지친 베비라쿠아씨는 온갖의 잔병치레 중이고 위선과 위악 그 중간에서 중심 잡기가 어려운 나는 지킬 앤 하이드가 되어있다. 집값 은행대출을 갚기 위해 직장을 구해야 하고 지난 16년간 잡지 않았던 운전대를 다시 잡기 위해 복잡한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고등학교 진학을 한해 남겨 두었지만 두 해만에 이탈리아어 수준을 13년간 이탈리아에서 산 아이들과 비슷하게 올리려면 그만큼의 많은 품이 드는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다.

몸도 마음도 아프다.
인간의 인내심을 바닥까지 끌어내린 시간 속에 내가 있다… 우리가 있다…
이런 내게 변함없이… 그저… 기댈 곳은 영화와 드라마, 책이니… 오들도 염치 불고하고 이 주치의들에게 기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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