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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ta è 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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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투표차 밀라노에 다녀왔다.
나는 2012년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이번 21대 대통령 선거까지 총선, 대선 재외국민 투표를 했다. 빠짐없이 했다. 딱 한번 출산기간에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를 하지 못했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 출산기간 나는 이곳 이탈리아 북동부 시골 마을 치비달레에 있었다. 밀라노까지 가는 길이 멀어, 몸을 푼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몸은 언감생심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 피 눈물을 흘렸다. 내 한 표가 모자라서 그리된 것인가 자책도 했었다.
13년 후 다시 돌아온 이곳 치비달레에서 21대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기위해 밀라노행 새벽기차를 탔다. 지난 금요일은 이탈리아 철도 파업이 있던 날이었지만 운 좋게 구해진 표로 새벽 첫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가는 길이 행복했다. 돈을 두 배 내고 표를 바꿨고 새벽부터 기차역까지 데려다줄 사람을 찾아 부탁을 해야 했고 아이의 등교 길도 챙기지 못했지만 행복했다. 뭐 저렇게 까지 고국의 대통령 투표를 하러 가나 의아해하는 이곳 가족들과 지인들도 있었지만 이해시키지 못해도 행복했다. 나는 스스로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었고 내 한 표가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확신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자주 가는 유튜브 채널의 댓글들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이런 연대로 우린 ‘동지‘가 된다. 별의별 사연의 험난했던 재외투표 경험담이 올라온다.
시간과 돈을 들여 뭐 저렇게까지 할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20여 년간 국외자로 산 나는 이런 재외국민의 마음을 안다. 정치는 중요하다. 고국의 정치는 우리 같은 재외국민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대한민국의 국격,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의 품격은 내가 존엄한 인간으로 살 수 있고 없고를 판가름한다.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외국에서 외부인 혹은 이방인으로 사는 우리가 가장 먼저 체감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율이 아주 높았으면 좋겠다.
내 후보가, 우리의 후보가 어마어마한 표로 당선 되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도한다.

바질리카 디 산 바빌라 밀라노.
내가 좋아하는 성당이다.
나는 2003년 가을을 넘어서는 겨울 그 3개월을 밀라노에서 보냈다. 내 나이 겨우 스물셋이었다. 그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음주가무, 쇼핑,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핫 플레이스를 가는 것이 내 삶에 꽤 중요한 의미였다.
마음껏 즐길 수 있던 시간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후회없이 놀았고 징그럽게 공부했던 여건이 주어졌던 내 상황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22년 후, 하룻밤을 머무는 일정으로 밀라노에 갔다. 지난 15여 년간 밀라노 총영사관에 영사 업무를 보기 위해 서너 번 다녀왔지만 당일치기 영사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그저 왕복 10시간의 고단한 여정이었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아낌없이 지원해 준 남의 편(?) 베비라쿠아씨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다. 현재 우리의 고단한 시간 속 아수라 백작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이고 있는 아내가 미울 테지만 안쓰러워하고 미안해하는 그에게 난 전생에 큰 도움을 주었던 인연이었던가 보다.
21대 대통령 선거라는 공식적인 이유로 도착한 밀라노에서 하룻밤을 묶고 한나절을 밀라노에서 보냈다. 정처 없이 그저 걷고 싶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길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신나게 놀았던 핫 플레이스들은 기억이 나질 않았는데 그 철없던 시간, 그 시절에 우연하게 들렀던 한 성당이 생각났다.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보니 그곳이 산 바빌라 대성당이었다.
늘 그렇듯 성당 제일 뒷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멍을 때렸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이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터무니 없어보이는 개똥철학 고뇌의 시작이다. 이름도 어렵고 그게 뭔가 싶은 네오 로마네스트 양식, 바로크 양식의 외관과 작은 규모라 소박한 듯 보이지만 어느 미술관 못지않은 작품들이 천장까지 전시되어 있는 화려한 성당 내부가 주는 위화감은 나를 철학자로 만든다. 사상가가 되고 싶지만 결국은 그저 멍을 때리며 머릿속을 비워내 보려 애쓰는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초라한 호모 사피엔스다.
밀라노에 가면 어디를 가볼까요 라고 혹여 누가 내게 묻는다면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는 곳이 산 바빌라 대성당이다.
우아한 척하며 멍 때리기 좋은 장소다.
https://en.m.wikipedia.org/wiki/San_Babila,_Milan
San Babila, Milan - Wikipedia
San Babila is a Romanesque-style Roman Catholic church in Milan, region of Lombardy, Italy.[1] It was once considered the third most important in the city after the Duomo and the Basilica di Sant'Ambrogio. It is dedicated to Saint Babylas of Antioch. At th
en.m.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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