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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

벨라줌마 2025. 5. 4. 21:35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Le risposte che i due Papi non hanno ancora dato
di Eugenio Scalfari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 1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하는가   
-스칼파리 <라 레푸블리카> 2013년 7월 7일-


여름으로 접어든 이번 주에 정계나 재계에는 새로운 소식이 없었다. 마테오 렌치 총리와 그의 반대자들 사이에 사소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내 눈에는 무익하고 소모적으로 비칠 뿐이다. 정말 새로운 상황은 이집트에서 발생하여, 근동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신문의 특파원들과 이런 문제들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그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저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오늘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교황의 회칙( 교황이 교리와 도덕, 규율적 문제에 관해 견해를 밝혀 전 세계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인 <신앙의 빛>으로 이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으로 서명하고 반포한 것이다. (2013년 7월 5일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번째 회칙인 <신앙의 빛>은 전임 교황 베비딕토 16세기가 집필 도중 교황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신 완성한 것으로, 82페이지 분량에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특유의 신학자적 스타일이 곳곳에 묻어 있고, 마지막 4장에서는 약자에게 희망을 주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것이 신앙의 역할임을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념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2013년 8월 한국어판을 발간했다. 개요는 CBCK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이 회칙의 주제는 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앙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신자들은 어떻게 신앙심을 실천에 옮겨야 하는가, 신앙심은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는가, 신앙심은 인간이라는 종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신앙심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 제기하는 질문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가 답을 찾을 수 없는 그 질문들에 어떤 답을 주는가. 이상이 이번 회칙의 주제다. 사실 이것은 19세기 이후, 즉 근대성이 이성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진리의 정의와 '절대'라는 개념을 문제 삼기 시작한 이후로 모든 교황이 당면했던 질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진리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람 수만큼 무수히 많은 진리가 존재하는가? 가톨릭 교회는 이 근본 질문에 비켜설 수 없다. 이 질문은 무엇보다도 근대 이후 유럽 문화의 뿌리인 자유라는 개념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회칙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1962년에 소집되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 진리와 자유의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은 특이한 일이다. 공의회는 교회와 근대성 사이에 대화를 시도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사실 공의회가 신성불가침의 '절대'라는 테마를 내세웠다면 다음 행보가 순조롭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단 전통적인 절차를 따른다. <신앙의 빛>이 애초에 라칭거(요제프 라칭거 Joseph Ratzinger 1927-2022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이 되기 전 이름)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은 바티칸의 대소사에 관심이 있는 역사가가 아니라면 그리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라칭거가 그에게 인계한 초벌 원고를 맡아 여러 가지 사항을 손보았다. 따라서 교황청에 거하는 교황과 로마의 대주교 자격으로 위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마침내 대화와 토론의 장이 열린 것이다. 

[중략]

Domande di un non credente al Papa chiamato Francesco
di Eugenio Scalfari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 2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가   
-스칼파리 <라 레푸블리카> 2013년 8월 7일-
베드로의 보좌(교황의 자리)에 오른 지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곳에 거처하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는지에 대해. 그는 신문기자들에게는 사실상 거의 말을 건네는 법이 없는데, 미디어를 가운데 두고 벌이는 서커스 놀음이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그의 취향이 아니다. 그 대신 공적이거나 개인적인 자리에서 쉬지 않고 사람들과 말을 나누고 있다. 그는 무척 다양한 장소를 찾아다니면서 귀를 기울이고 묻고 대답한다. 그의 손에는 늘 뭔가 읽을거리가 들려 있는데, 금방 다른 것으로 바뀐다. 그는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즉흥적으로 연설을 하는데 노천에서든 교회에서든 어부의 배 위에서든 코파카바나 해변에서든 회의실에서든 혹은 신도들의 무리를 부드럽게 가르며 나아가는 방탄차 위에서든 어디든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요한 23세처럼 선하고 요한 바오로 2세처럼 사람들을 매혹한다. 예수회 수도사들 사이에서 자랐으면서도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아시시의 그 소박한 성자가 원했던 교회를 가장 이상적인 교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비둘기처럼 순수하고 여우처럼 교활하다. 모든 사람이 그에 관한 글을 쓰고, 모든 사람이 경탄의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사제든 평신도든,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그리고 신자든 무신론자든 모두가 다음 날 교황이 무슨 일을 벌일지 보기 위해 기다린다. 

그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추기경으로 있을 때나 로마의 교황으로 있는 지금도 정치와는 담을 쌓고 있다. 그러면서도 비델라(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Jorge Rafael Videla 1925-2013 아르헨티나 군인 출신 정치인. 육군 참모장과 육군 총사령관 등을 지냈다.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 아사벨 페론을 축출하고 군사평의회의 추대로 대통령에 취임했다.)를 조목조목 비판했는데 그가 백성을 짓누르는 독재정치를 펼쳤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노약자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껄끄러운 목소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정부는 그때까지 유명무실하던 구호기관을 그의 뜻대로 활용하게 했다. 그 후로 베르골리오는 자신의 교구를 보좌신부에게 맡기고 선교사로서 전국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고, 교육하고, 희망과 형제애를 북돋우기 위해서였다.
[중략]

목회 활동? 물론 가치 있는 일이다. 교육 활동? 선교 활동? 빈민 구제? 교회의 그러한 특징들은 당연히 이 교회라는 기관이 강철 상자 속에 든 보물처럼 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그러나 잠시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지난 2000년 동안 교회는 하나의 기관으로서 말하고 결정하고 행동해 왔다. 모든 교황은 권력을 수호하고 보강하고 또 사랑했다. 교황 중 단 한 사람도 청빈의 깃발을 높이 세우지 않았고 아시시의 그 소박한 성자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았다. 게다가 힘이 약해지거나 분쟁이 휘말릴 때를 제외하고는 수평적인 교회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늘 수직적인 모습만을 보여 왔다. 2000년의 역사 동안 가톨릭교회는 스물한 번의 보편공의회(교황이 소집하는 주교회의. 전 세계 가톨릭 주교들이 모여 교회의 주요 안건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권위 있는 회의다. 제1차 보편공의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25년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이고 스물한 번째 공의회는 교황 요한 23세의 주제하에 1961 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폐막했다.)를 소집했는데 3세기와 5세기 사이 그리고 9세기와 13세기 사이에 특히 집중적으로 열렸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열린 이후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까지 300년 이상을 -그 사이에 교황 비오 9세가 간행한 인단교설 80개 조가 있기는 하다- 기다려야 했다. 그 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는 다시 80년이나 걸렸다. 물론 교구 단위의 성직자 회의는 훨씬 많이 열렸으나 모두가 로마 교황청과 교황에 의해 소집되었고 주재되었다. 마르티니 추기경( 카롤로 마리아 마르티니 Carlo Maria Martini, 1927-2012 이탈리아 토리노 출생. 1944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1952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1968년부터 1978년까지 성서대학원 학장 및 로마 그레고리 대학교 학장을 역임한 후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이탈리아 밀라노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며 1983년에 추기경으로 추대되었다.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영신 수련에 관한 그의 저술은 기존의 전통적인 이냐시오 모델을 보완해 주는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가톨릭에서 금기로 여기는 콘돔이나 여성의 재혼에 개방적이고 가톨릭교회의 교회관료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은  -그 또한 예수회 소속이었는데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주교들의 공의회와 교구회의와 각종 회담, 그리고 목회 활동이 교황의 권위와 수평적인 구조 속에 나란히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길 원했다. 베르골리오가 초기에 그러했듯이 그는 로마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그 결과 교황선거에서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되었다. 

베르골리오 역시 수평적인 구조를 좋아한다. 요컨대 그가 스스로 밝힌 바 있듯이 그의 소명은 근본적으로 혁신적인 두 가지 메시지 위에 기초하고 있다. 프란체스코의 청빈한 교회와 마르티니의 수평적 교회가 그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하느님이다. 영벌은 없고 지옥도 없다. 그렇다면 연옥은? 당연히 존재한다. 참회는 용서를 받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하느님을 찾는 게이들과 이혼한 사람들을 심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베르골리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몇 가지 질문하고 싶다. 사실 그가 답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한 사람의 언론인으로서가 아니라, 마리아 요셉의 아들이자 다윗 왕 혈통의 유대인인 나사렛 예수의 행적에 오래전부터 깊은 관심을 두고 경탄해 온 한 사람의 무신론자로서 묻는다. 계몽주의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나는 신을 찾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신이란 인간의 마음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창조한 매력적인 발명품이라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나는 그런 견지에서 감히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몇 가지 질문하고 거기에 내 견해를 몇 가지 덧붙이려 한다. 

첫 번째 질문 만약 어떤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고 믿음을 얻으려 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교회가 죄로 규정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가?

두 번째 질문 신자는 신에 의해 계시된 진실을 믿는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절대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절대적인 진실도 없으며 다만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일련의 진실들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교회의 입장에서 이러한 사유의 방식은 오류나 죄를 범하는 것인가?

세 번째 질문 프란치스코 교황은 브라질 여행 중에 인간이라는 종족도 시작과 끝이 있는 다른 모든 존재처럼 언젠가는 소멸하리라고 말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또한 나는 인류의 소멸이 신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생각 주체의 소멸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종족이 사라지면 신도 사라지게 되는데 신을 생각할 능력을 갖춘 존재도 전혀 남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교황은 분명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을 터이고 나는 그 대답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이제 내 견해를 이야기할 차례다. 나는 청빈한 교회를 내세우는 교황의 행위가 이 세상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하나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이가 또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을 금지하고 권력의 수단을 무력화하는 청빈한 교회는 사실 무의미하다. 그것은 이미 루터를 통해 일어난 일이다. 오늘날 루터를 따르는 개신교의 교파는 수천에 이르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 교파들은 세속적인 분리를 막지 않고 오히려 그런 식의 확산을 장려한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그동안의 모든 결함과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런 추세에 저항해 왔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았기에 한결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 같은 무신론자들에게 무척 인기가 있다. 그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와 나사렛 예수만큼이나 무척 매력적이다. 그러나 바울로가 없었다면 예수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나의 소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