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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ta è bella
모스크바와 민스크에서 보낸 지난 십 년의 겨울. 길었다. 추웠다. 힘들었다. 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이라는 낭만 단어는 내 부정적인 감정의 기억을 왜곡시킨다. 모스크바와 민스크의 겨울은 하얀 세상, 눈으로 덮인 동화 속 마을이었다. 아이는 걸음마를 떼며 스케이트와 눈썰매를 탔고 아빠와 얼음낚시를 했다. 시베리아와 알타이의 겨울 장관, 그 자연의 아름다움에 베비라쿠아씨 부부는 할 말을 잊었고 아이는 눈밭을 뒹구르는 가장 재미진 놀이를 참 좋아했다. 얼음이라는 투명한 결정체로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추위였지만 그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저 모든 것이 재미졌다. 하지만 고달팠던 긴 겨울, 그 중심에는 분명 추억을 공유했던, 함께 욕하고 함께 좋아하고 함께 시간을 나누었던 친구들이 그리고 가족이 있었..
아이를 키우며 함께 성장한다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나처럼 철은 늦게 들고 생각은 많고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느린, 감성선이 꽤나 오락가락한 부류는 아이에게 읽히고 싶어 집어든 어린이 도서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종종.. 아니다… 자주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 치과 치료에 들어간 베비라쿠아씨를 기다리려 서점에 들렀다. 세레나에게 선물하면 좋겠네..라는 마음으로 집어든 책을 펼쳐… 선자리에서 홀로 다 읽어 버렸다. 뜻이 분명하지 않았던, 몰랐던 단어가 너무 많아 사전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열정까지 보였으니 세레나에게 선물은 핑계고 내가 읽어야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감정을 너무 내보이지 않는 것이 착한 어린이,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바른 길이라는 사회적 혹은 밥상머리 가정교육의 분위기 속에..
내 10대와 20대의 크리스마스는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노는 날이었다. 20대 성년이 되어서는 대략 나이트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가 이탈리아에서 이리 중요한 가족 모임의 날인 줄 몰랐던 시절이다. 오랜만에 이탈리아 시댁에 모두 모두 모여 대 가족 행사를 치렀다. 음식 장만에 애쓰시는 시어머님과 이모님 자매분께 조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밤이 새도록 음주가무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던 그 청년도 중년의 나이로 들어서는가 보다. 크리스마스 휴가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는 나의 베비라쿠아씨에게 ‘함께 성탄절 미사보기’, ‘함께 영화관 가기’를 답했다. 그래서 참으로 오랜만에 그와 단둘이 우리의 결혼식 주례를 보신 신부님이 계신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다. ..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아침…. 무슨 영화 속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손이 시려 장갑을 껴야 하는 계절이 왔다. 장갑을 끼면 사진을 찍는 것에 무척 게을러진다. 그래도… 하루에 얼음비, 비, 해, 안개를 모조리 불러들이는 이곳….. 집 근처 근사한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골목, 언제 하루 로맨틱한 밤을 보내봐야지 하며 콕 찍어둔 레스토랑의 하얀 테이블보 위, 떡하니 당당하니 자리 잡고 앉아 햇살 쬐이는 고양이가 있는 이곳…. 11월 중순 스페인에서 출발하여 12월 5일 네덜란드에 도착해 착한 아이들에게 사탕과 과자를 주는 Sinterklaas가 있는 이곳….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방과 후 수업을 하러 간 아이를 기다리며 나 홀로 호프집에 앉아 전반전을 보고, 수업을 마치고 쏜살같이 달려온 아이..
암스테르담 시청에서 보내오는 공문을 읽을 때면 내가 암스테르담 시에 거주하고 있구나를 새삼 깨닫는다. 보내오는 공문이 꽤 구체적이다. 시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꽤 많다. 지난 3월에 처음 받아 본 공문, 단어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며 해석에 열을 올린 편지의 내용은 시에서 편성받은 예산을 우리 동네(지역) 필요 지출 목록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안부터 처리하고자 하니 (해당 구청) 사이트에 방문하여 투표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읽으며 꽤 이상한 감정이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아침 받은 공문을 차근차근 읽어본다. 우리 동네에서 영상(영화, 드라마, 홍보)제작을 하는 경우를 꽤 본다. 뭘 찍나 호기심 발동이 드는 날도 있지만, 솔직하게..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88 서울 올림픽이 열린 해에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입학을 한 해 일찍 했기에 3학년이었다. 2학년이던 3학년이던 4학년이던… 나는 사실 초등학교 졸업시기까지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선명하지 못한 기억의 저편에 그나마 흐릿하지만 인상적으로 보이는 단편 중 하나, 텔레비전 화면 속 올림픽의 개막식인지 폐막식인지 비둘기 떼를 하늘로 날려 보내는 퍼포먼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라고 했다. 나쁘지 않은 기억이었다. 인상적이었다는 말이 잘 들어맞는 기억의 단편이다. 시간이 한참 흘러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세계의 도시들을 여행하기 시작하며 난 비둘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광장에 떼로 모여있는 비둘기들을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떼로 그득그득 몰려있는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는 사람들..
이성의 힘이 정의에 기여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 때문이다. 첫째는 이성이 사회적 조화를 위해 개인의 욕망에 내적 제한을 가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성이 전체 공동체의 지성적 전망에서 개인의 요구와 주장을 심판하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사회가 불의를 용인하는 이유는, 그 사회가 권력층과 특권층에 의해 만들어진 가식과 겉치레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로 인해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회계층조차도 그 불의에 책임을 져야할 권력층을 존경한다. 만일 사회에서 합리성이 증대된다면, 불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합리성은 권력층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가식과 겉치레의 공허함을 의식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만심을 꺽어, 자기기만의 정도만큼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거나 특권을 옹호할 ..
‘책임의 문제가 아니다…………………’ PD 수첩 이태원 참사편을 보다 기가 막힌다. 당신들의 이름, 얼굴을 기억하려 노력할 것이다. 당신들이 내뱉은 이 말을 잊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혐오가 가장 쉽다. 탓을 할 대상을 찾는 일이 가장 쉽다. 쉬운 방법으로 감당하기 벅찬 일을 해결하려는 것이 가장 쉽다. 하지만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는 현명한 방법을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나는 여전히…. 5 18 희생자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가중시킨 이들을 저주한다. 세월호 참사에 고통받는 이들 앞에서 햄버거를 먹고 피자를 먹으며 조롱과 혐오의 길에 앞장섰던 이들을 저주한다. 조용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깊은 곳에서… 도저히 조절하기 힘든 저주를 내뱉는 나를… 혹여 신이 미워하실지라도 멈추기가 힘들다. 참사는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를 그 조의를 표해야 하는 암울한 사건이다. 진심으로 슬프고 암담한 시간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암스테르담에도 가을이 오셨다. 오락가락한 날씨가 마음을 쥐고 흔들지만 이렇게 해가 드러나는 날은… 가을의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가 삶의 터전으로 머물렀던 모든 도시는 고양이들에게 아주 우호적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처음 본, 그러니까 집고양이든 길고양이든 고양이들에게 너무도 친근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알 수 없는 평화로움을 느꼈다. 바쿠에서의 삶을 일기로 써 내려간 아제르바이잔 라이프, 그 첫 포스팅에 올린 사진도 가구점에 들어가 시체처럼 자고 있던 고양이였다. https://cividale-33043.tistory.com/m/113 모스크바도 민스크도 아파트 곳곳에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줄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내 모스크바 친구들도 고양이와 생활하던 터라 그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