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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ta è bella
열 아홉번째 장 본문
2016/09/30 16:14
나는 월경전 증후군 중증 환자에 속한다. 구체적인 증상은 인터넷 의학정보에 요약되어 있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생리 시작 3~4일 전부터 극도의 예민 상태 모드에 돌입되고 사사로운 것에 짜증을 내며 단 것에 혈안이 되기 시작한다. 정신적 상태도 환자 모드지만 신체적 상태도 환자 모드로 간다. 아랫배와 허리가 아프고 생리 시작과 동시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면 방바닥 혹은 침대와 한몸을 이뤄 고통의 몸부림에 뒹굴기가 시작된다. 고통의 시간이 경과 하면 기절 상태..... 그리고 깨어난다..... 그리고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 듯 모든 것이 고요하게 안정된다.
친정엄마는 그런 나를 보시며 결혼하고 애 한둘 낳으면 다 없어지는 병이니 너무 걱정말라 위로를 하시곤 했는데.....나는 결혼도 했고 애도 하나 낳았지만 여전히 병은 낫지 않았다.
어느덧 20여년간 함께해온 이 고통의 몸부림은 나와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 비교적 생리 주기가 매우 규칙적인 나는 생리 시작일을 꽤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어 고통의 시간이 언제부터 시작되는구나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도움이 됨과 동시에 타인에게 향하는 비수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나는 이 강력한 무기가 타당하게 사용되었다는 자기합리화를 피하기 위해 생리주기에는 대인관계를 피한다. 가까운 사람 일수록 거리를 더욱 더 둔다. 상대가 한 별말 아닌 말에 상처를 받고 요상스런 의미를 부여하여 '오해가 낳은 서운함 혹은 삐침' 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20여 년이면 그만 할 만도 한데 어째 매 달 빠짐없이 반복하여 이런일이 일어나는가 도무지 알수가 없다.
지난 7년간 비수의 조준 목표물은 베비라쿠아씨 였다. 피할 수 없는 관계....매일 얼굴을 마주해야하는 내 가족....인 그는 별일 아닌 일에 늘 대역죄인 누명을 쓰고 모든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되어 심장의 정 가운데를 내어주어야만 하는 피해자가 된다.....그에게 미안한 마음 한 없이 넘처 흐르지만 나 자신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는 마당에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게다는 사과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된다. 그래도 이제는 제법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찾은 것인지... 때가 왔노라의 암호 : 퇴근길에 초콜릿 사와! 라는 메세지를 보내면 군말 없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의 초콜릿을 사다 주고 그 날부터 삼 사일 간은 그야말로 눈치밥으로 배를 채운다.
언젠가 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한 달에 한번...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는 내 못된 말, 못된 행동에 한대 쥐어박아 주고 싶을 만큼 많이 밉지 않으냐고.... 그가 답했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살던 신혼 초기, 점심을 집에 와서 먹던 그에게 한 달에 한 두번은 점심 먹으러 오지 마! 나 오늘 밥 하기 싫어!의 문자를 보내 내 고통의 시간을 애써 숨겼었다. 인간의 정상적인 생리작용도 숨기는 마당에 여성만의 생리 작용을 공유하기란 매우 어려운 부분이었기에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은 문자를 보낼 틈도 없이 기절 상태에 도달했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모른체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돌아온 베비라쿠아씨는 식은땀 범벅, 의식도 가물가물한 상태로 소파위에 널부러져 있던 나를 보고 무슨 사고가 난 줄 알고 기겁을 했다. 점심시간을 한참 초과한 시간을 보내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 내내 식은땀 범벅의 얼굴에 내가 한 말을 되새겼다고 한다.
"괜찮아. 아는 병이야. 한 달에 한 번씩 늘 겪어온 일이야. 이렇게 죽을꺼 같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져...근데 그만 봐. 나 완젼 못생김 상태란 말이야....."
내가 갖고 있는 병명이 국가적 안보를 위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안되는 처지에 놓여있는 인물은 애석하게도 아니지만 굳이 알려 모두에게 대놓고 위로 받을 수도 없는 여성의 질환이기에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꺼내 놓으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두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내 아이 세레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곧 네 돌을 맞이하는 세레나와 함께한 시간이 벌써 네 해가 된다. 이정도면 속속히 잘 알아 엄마로서 이해해주고 가족으로서 비수의 목표물이 되어 있음에 담담하게 받아들여 줄만도 한데.... 그게 참 힘들다........ 일주일 전부터 아이의 투정과 짜증 수위가 높아졌다. 유치원에서도 지적을 받을만한 행동을 빈번하게 하고 낮 잠을 거부하고 단 것을 필요 이상으로 찾았다. 이런 아이의 증후에 왜 그럴까? 무슨일일까의 대처가 아니라 혼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엉덩이까지 찰싹 손찌검을 했다....... 그렇게 못된 엄마의 무식하기 그지없는 훈육의 방법을 동원했는데.... 알고보니 아이가 아프다..... 엇그제 밤부터 미열을 넘어선 체온을 유지하더니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린다...
세레나가 24개월을 넘어서며 아이를 갖은 엄마들을 떨게 만드는 계절, 그 타이밍이 언제인가 몸은 기억을 한다. 환. 절. 기. 모스크바의 환절기인 9월과 10월은 안 아픈아이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아무리 아이들을 꽁꽁 사매고 조심을 시켜도 어느틈인가 바이러스는 귀신같이 침투한다. 학교같은 단체집단 생활은 내 아이가 아무리 건강해도 한 아이가 감기 바이스러를 달고 들어오면 사이좋게 모두 함께 공유한다.
계절의 변화, 아이들의 감기를 문제 삼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건 내가 매 달 한번씩 겪어야하는 월경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문제는 월경전 증후군과 같은 아이의 아프기전 증후군을 감지하지 못하는 바보같은 나다...... 자신의 몸상태가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아이들은...그것을 몸으로 설명한다....
열이 40도를 웃돌아도 뛰고 놀아대는 아이들인데.... 몸에 이상기운이 그저 시작의 단계인 아이들이 그것을 어찌 말로 표현한단 말인가.......
"너는 왜 선생님 말을 안들어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어?"
"유치원은 놀이터가 아니야!! 하루종일 낮잠도 거부하고 미친듯이 뛰어만 다니고 소리지르고....너 바보야? 그럴꺼면 학교 가지마!"
"넌 오늘 집에가서 맴맴야. 엄.마.가. 수.십.번. 말.해.도. 안들으면 맞아야지 별수있어?"
내 이름에서 엄마라는 호칭만 바뀌었을뿐 여전히 세상의 중심은 나다..... 이 아이러니한 이기심.... 자기애.... 젠장...... 속상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