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6 06:37

고르곤졸라(Gorgonzola)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치즈 중 하나이다.
내가 유일하게 먹지 못하는 이 치즈는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최고의 식재료이며 베비라쿠아씨 가족 모두 콜레스테롤 걱정을 접는다 하면 매일 매일 빵에도 크레커에도 그냥 발라 간식으로도 먹고 에피타이져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들에게 이렇게도 맛있는 이 치즈가 나에게는 그저 발고린내 무지하게 나는 치즈로 그 가치가 전락되어 십 년이 넘게 가족들의 짓궂은 장난의 도구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내가 처음 고르곤졸라 치즈를 먹은 날 지어보였던 그 해괴망칙했던 내 얼굴의 일그러짐을 잊지 못하는 베비라쿠아씨는 요즘도 가끔 내 부탁의 받아들임의 조건으로 고르곤졸라 시식을 요구한다.
그가 많이도 좋아하는 음식이기에 눈을 꾹 감고 한입 먹어보려고 노력했던 것이 한 두번이 아니지만 늘 그때마다 목으로 넘기지 못하고 입을 손으로 구겨잡고 싱크대로 향하니...하는 나는 고통이나....그걸 매 번 봐도 재미있어 뒤로 넘어갈 듯 웃어대는 그에게는 행복인가보다. 나는 식재료로 사용되는 고르곤졸라 치즈도 먹지 못한다. 피자에도 리조또에도 폴렌따에도.... 아주 소량을 사용하여도 그 냄새를 기가막히게 기억하는 내 코가 이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김치는 베비라쿠아씨가 매우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이다.
2004년 여름, 처음 한국에 온 그는 우리집에서 한 달간 머물며 우리엄마의 삼시세끼 밥상을 받아 먹었다. 엄마가 무엇을 만들어주던, 특히 온갖 종류의 김치를 거부감 없이 잘도 먹는 그를 보며 나는 "어머! 애 진짜 나 너무 좋아하나봐"의 착각속에 깊이 빠졌었고,
엄마는 "뭐 이런애가 있지?"예쁜마음 반 의심스러운 마음 반이( 그 당시 그를 그저 친구라고 식구들에게 소개했었기에...)들었었다 했다. 나를 너무 너무 좋아하여 억지로 먹는것이다가 진정 착각이었구나를 느낀건 도착 일주일 후 부터 엄마가 김치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내면 자동적으로 다가가 손으로 쭉 찢어 밥상에 올리기도 전에 본인의 입에 넣는 것을 본 이후였다.
십 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가끔씩 우적우적 김치를 잘도 먹는 그를 보며 넌 정말 김치가 맛있어서 그렇게 먹는거니? 를 묻는다.
이제는 대답도 안하는 그를 보며...
난 그래도 네가 여전히 날 너무 좋아해서 억지로 김치를 맛있게 먹는 거라 생각한다 주절거린다...

세레나는 고르곤졸라 치즈를 거부하지 않는다. 피자에 들어있는 것도 리조또에 들어있는 것도 아빠가 주는 것을 아기새처럼 잘 받아 먹는다. 또한 세레나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우리 오늘 김치 먹으러 갈까?"이다. 매운맛의 김치를 잘 먹지 못하는 아이지만 김치먹으러 갈까의 의미를 한국음식 먹으러 가자의 의미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에게 오늘, 엄마 아빠랑 피자 먹으러 갈까와 김치 먹으러 갈까의 선택의 기로의 날이 올 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해야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나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세레나......
세레나는 두 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엄마와 아빠는 음식도 문화도 역사도 조상도 판이하게 다른 한국사람과 이탈리아사람이다.
한국 엄마와 이탈리아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아기를 보내는 세레나.....
아이의 청소년기를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보내게 될지 짐작조차 불가능한 우리의 상황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부정적 마음을 앞서게 한다. '험난한 아이의 성장 과정' 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내가 어머니의 입장에서 자식을 바라보는 지극히 일차적 시각일지도 모르겠다고 그것이 부모의 마음 일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기도 또한 자기합리화를 시켜보기도 한다.
그렇다....내 눈에는 벌써부터 험난한 아이의 성장 과정이 보이는 듯 하다.

고르곤졸라와 김치.
베비라쿠아씨와 나를 한 단어씩으로 표현하라 이르면 나는 이 두가지 음식을 꼽는다.
음식은 자신이 나고 자란 배경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도구라 생각한다.
이탈리안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고르곤졸라를 먹지 못하는 것이 늘 미안한 엄마, 한국인 아내를 만나 김치를 포함한 많은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에 늘 감사하는 아빠를 둔 세레나,
세레나는 이미 그 다름의 어우러짐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 보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험난한 과정'에 어떠한 조력자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고르곤졸라를 먹지 못하는 것이 왜 미안한 것인지, 김치를 좋아하는 것이 왜 감사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볼 뿐이다.

 

너도바람 2015/06/11 13:24 R X
남편은 우리 친정 음식을 잘 못먹어요. 전 아무 음식이나 잘 먹지만 먹는것에 목숨 거는 시댁 음식 문화에 거부감을 느껴요. 그래도 서로 미안해하거나 아이에게 설명하지 않아요.

한국, 이태리, 러시아로 이어지는 문화의 충돌 혹은 다양성이 전 세레나에게 아주 값진 경험이고 기회라고 생각하고 부럽기까지 한걸요. 한국이 다른 것에 대해 여전히 폐쇄적이지만 저도 깜짝놀랄만큼 세상이 달라졌어요. 벨라님 한국 떠날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만큼일걸요. 한국, 이태리,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단어가 정체성의 혼란보다는 다양성의 값진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로 바뀌고 있지요. 게다가 엄마가 벨라님이잖아요. 뭔 걱정요. 벨라님보다 베비라쿠아씨를 뛰어넘는 멋진 삶을 살걸요.

벨라줌마 2015/06/18 04:53 X
세레나가 태어나기 전에는 이렇게 진지하게 서로의 다른 문화속에 부딪히게 될 사항들에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어요. 남편은 여전히 무엇이든 쉽게 무겁지 않게 받아들이고 설명하지만 저는 그게 잘 되지 않으니 고민이랍니다. 언어도 문화도 역사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는 우리 부부가 유일하게 no problem을 외칠 수 있는 분야가 음식이에요. 서로 잘 모르는 것, 상대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하지 않으며 그저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음식이구요. 이런 마음을 세레나가 크면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요.

달라진 세상, 또 계속해서 달라질 세상 속에도 부모들의 걱정은 많이 달라지지 않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들어요. 너도님의 말씀.....마음속에 얹혀 놓은 돌덩이 하나가 툭 하니 떨어져 나가는 기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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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벨라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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