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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장

벨라줌마 2018. 12. 1. 15:32

2011/12/22 20:33

 

풍진 세상에, 낮달님의 문제아는 발길질과 따귀로내가 왜이러지?’ 글을 읽고 읽었다.

 

처음에는 공감해서….두번째는 마음이 아파서
그리고 세번째는 학창시절, 치유하지 못한 그래서 작은 부딪힘에도 덧나는 상처,
이제는
그만 약효 좋은 연고를 발라 딱지가 붙고 새살이 돋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었다.


아이들 성장의 길목을 지켜보는 이들이 교사다. 아이들이 겪는 질풍노도의 시간들 속에 교사들도 함께 있다. 아이들이 그것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주체라면 교사들은 그 시간을 지켜보는 증인이다. 눈짓과 몸짓 하나도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정작 교사들은 알지 못한다. 라는 낮달님의 글에 마음이 쿵하니 내려 앉았다.

MC Escher 'Encounter'(1944)


 네번째 장에서도 이야기한적 있었던 중학교 1학년때의 담임교사였던 스승님은…..
나에게
선생님이란……. 여러번의 마침표를 찍게 하는 너무 확고한 그림을 그려 넣어주셨다.
나의
무지하고 순진한 그림이 어쩌면 너무나도 일반적인 그래서 없는 교사들에게까지
당신은 교사잖아요….선생님이 아니신건가요?’ 라는 무언의 압박을….
천직이라하는 사명감이라는
어쭙잖은 틀에 그들을 가둬 버리는,
꿈같은
그래서 현실감 떨어지는 기대를 하게 만든것이 아닌가하는 원망도 해본다.

낮달님이 초임교사로 계셨던 시대의 여고생들은 다소곳하니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말라..
개중에
엇길로 가는 애가 없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를 흩트릴 정도는 아니었을지 모르겠으나 90년대
중후반에
여고를 다닌 나는 어쩜많은 교사들에게 세상이 말세다라는 말이, 한숨이 절로 모습들이 
여고생=불안당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개중에 들어내놓고 문제를 일으키는, 반항을 하는 학우들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교탁에서 교실의 사물함까지 따귀를 맞고도, 복장검사를 한다며 길고 가는 막대기로
가슴 바로 앞에 붙어있는 명찰표를 꾹꾹 눌러대는 행위에 수치심을 느끼고도,
들어내어
놓고 촌지를 받은 아이들과 받지 않은 아이들을 차별하는 담임교사에게도,
아무도
아무런 대처를 없었던…..


나역시
가장친하다는 친구가 정당한 이유없이 맞는 상황에서 나는 혹시 맞을 일이 없는건가?
오늘
숙제 해왔나? 안위를 걱정했을 , 가슴뿐이 아니라 당한 수십명의 가슴 그냥 하나라고
생각하자며 긍정주의의 최대치를 끌어냈을 , 촌지를 주고 왔다는 엄마를 그냥 그저 경멸에 눈으로
바라봤을
……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나만 아니면 . 라는 방. 관. 자. 의 자세로만 대응했다.

 

3년의 시간이 지옥처럼그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을 뿐이었다.

MC Escher 'Drawing hands'(1948)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 험하고 험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교우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만큼,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지냈다. 
1, 2학기부터 였던거 같다. 중학시절 3년내내 리더의 자격으로 많은 것들을 이끌고 함께하는 것에
목숨도
내어놓을 만큼의 열정, 2학년 2학기 부모님의 이사 결정에 전학의 반대의사를 내고 1시간 40
거리의
통학에도 지각한번 해본적 없는 성실함을 쏟아 부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상반되는 시간이었다.


2때부터는 부패한 학교재단의 추태가 추태를 부추기는 소신 접은 교사들의 행동이 나에게는 불신이라는 가장 무서운 결과로 작용되었고 학교와는 점점 등을 지게 만들었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는 아니였으나 욕심으로 버텨오던 성적은 바닥을 치기시작했고,
불신 교사들의 너무 당연한 대응, 무섭다는 관심 밖 학생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잘 했다.
시도하는 종목마다 선수를 시키자는 코치의 제안에 부족한 것
(?) 하나 없는 내자식 그 험한 일 안시킨다는
엄마의 단호함이 종목을 바꿔 가게 되는 첫 레슨의 시간이었다
.


3, 이제 그만 운동하는 것에 손을 떼라는, 공부에 전념할 시간이 되었다는 엄마 말씀에 대 놓고 반항하듯
검도장 등록을 했다
. 물론 부모님 실망 안시킨다는 전제하 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고3 수능이 끝나고
실망이라는 단어를 한아름 안겨드렸었다
.
고교
3년간, 내 젊음의 불만과 불신, 그 분출, 그 탈출구로 난 검도 도장을 택했었다.


 3시절, 죽도를 등에 매고 등교해 있지도 않은 대련이나 대회를 핑계대고 조퇴를 한적도,
아침에 등교길에 올라 발걸음 돌려 인천행 전철에 몸을 실은 적도 여러번이다
.
아마도 선생님들께 보내는 내 마지막 구조의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너무쉽게 내어주는 조퇴증
, 한 주 걸러 한번하는 무단결석에도, 수업시간에 대놓고 소설책을 연장
읽어대어도 혼찌검 한번을 내지 않는 담임
.
시간이 흘러 마음고생 많이 하신 우리엄마말씀
, 문제있다하여 자주드른 학교 그때마다 내어준 촌지,
꽤나 넉넉하게 살고있던 우리집
, 내 부모의 돈, 우리엄마의 한 카리스마 자식단속법이 내 담임의 지저분한
입을 막고 빡빡하던 그의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는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

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교사? 웃기시네 당신들이 이나라의 새싹들을 줄기한번 뻗어보지 못하게
어떻게 말려죽이는지 내눈으로 똑똑히 확인할거다
, 그리고 교사라는 자격으로 안주하고 있는 그 보금자리가 얼마나 오래 가게되는지도 내눈으로 확인할꺼다 하는 저주를 퍼붓고 시크하게 안녕을 날렸었다. 
그후 시간이 한참 흘러 우연히 만난 고교후배
….. “언니 그거 알아요? 왜 언니 고3 담임이었던….
짜증나게 내 고
3 담임이기도 했던 ….작년에 정년퇴임 1년 앞두고 애들 또 두둘겨 패다 동영상 찍혀
학교 발칵뒤집히고
, 촌지며 뭐며 구린돈 받은거 뽀롱나서 결국 짐쌌데요

신의 존재를 다시한번 확인 한 날이었다
.

 

MC Escher 'Eye'(1946)

이건 낮달님의 글과는 무관한 내 개인의 아픈 한 토막이다.

학생은 알고 있다, 저 선생님의 행동이 진정 나를 위함인가 아니면 자신의 개인적 한풀이인가.

물론 폭력은 정당성을 찾기 힘든, 100번 100패의 패자의 위치에 서게된다.

 

하지만 성숙하고 있는,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매 라는 폭력 외에도 무관심 혹은 차별이라는 폭력에

단단한 두께의 얼음장 같은 고정관념이 생긴다는 것……
후에 그것을 깨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

 


난 불량교사들에대해 말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교사라는 어려운 직업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시작하는 어른도 많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성경속 예수님의 말보다도, 불경속 부처님의 말보다도 더 위대하고
그 위대함에 맹목적 믿을을 갖게 된다
.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

 

낮달님의 글을 읽으며 교사라는 직업을 둔 오블에 좋은 블로거들의 글을 읽으며….


최근의 나는….사실 너무 아파서… 열리지 않을 단단한 상자안에 자물쇠까지 척하니 걸어둔….
내 고등학교 시절, 상처의 빗장을 풀어....
치유해 보려 노력 중이다.

 

 

youngchippy 2011/12/22 22:05 R X
사람에게는 절대 늙지않는 마음 한 자락이 있어요. 바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이지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내가 눈길을 주는 사람, 내가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에겐 더더욱 그 마음이 간절한 법이고, 그래서 그 사랑이 배신당했을 때 우리는 절망하지요.
그런데요...내 안에 묵히고 먼지쌓인 채 꽁꽁 넣어 둔 그 상처들이 사실은 모든 영혼의 모습인 것 같아요.우리는 그 깊은 곳에 숨겨 둔 상자를 감추고 산다 하지만 때론 한숨으로, 때론 눈물로, 또 가끔은 다른 누군가를 향한 분노와 증오로 늘 같이 보듬고 살아왔다는 걸 느끼죠. 다른 모습, 다른 시간, 다른 상처로 힘들어 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다 같은 모습이예요. 우린 이기기 위해 상처를 꺼내진 않아요. 그저 그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부분일 뿐, 전체는 아닌 것이죠. 그래서 나에게 말하죠. "그래. 나는 나 일 뿐이야. 상처로 나를 설명할 필요는 없어. 내가 이젠 그 상처를 이야기 할 뿐이야."
벨라줌마 2011/12/23 13:42 X
좋은말씀 감사해요....
예상하지 못한것에....울컥하는때가 있어요....
바쿠시간으로 7시 반에 남편을 출근시키고 컴퓨터 앞에 앉아요. 대부분 메일확인이나 새로올라온 뉴스 클릭하기였지요....오블을 하고나서부터는 오블을 가장 먼저 들어오게 되네요..우연히 드른 낮달님 글을 보며 아련했던....아팠던 시간이 떠올라...사실 놀랐어요.... 사실 상처라고 말하기엔 너무 거창할 수도있는....말씀하신데로 내안에 묵히고 먼지쌓인 채 꽁꽁 넣어둔..... 그 기억이 올라왔나봐요. 사실 오블하면서 놀랐어요.....세상에 그 수 많은 직업중에 내가 유일하게 깨기 어려웠던 고정관념으로 선을 그엇던 직업군...'교사' 를 하고 계시는 많은 블러거들 때문에요...
저는 신의 존재를 믿어요....
그런 작은 상처로 인해 그어진 그릇된 잣대로 고정관념이라는 틀안에 가둬놓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걸....봐라....네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라는 걸....언젠가는 꼭 깨닫게 해주는 거 같아요..... 영치님 마지막 문장에 마음이 또 찡 해오는거 같아 뭉클뭉클한 아침이에요.
우리함께 2011/12/22 22:16 R X
저도 낯달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배들에게 배운 것이 매를 대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매로 가르치는 방법은 차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선은 매가 아닌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아이들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못하고 싶은 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다 사연이 있는 학생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알게 되는데 한 5,6년 걸렸습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올려주신 글을 보고 선생님이 학생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를 다시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벨라줌마 2011/12/23 13:39 X
선생님의 옳은 가르침으로 드는 매는 필요하다고도 생각합니다....그 옳고 그름의 기준이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교사라는 어려운 직업의 기준으로 든다는 것이 힘든것 아닌가....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함께님.....좋은 예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엄마, 어머니들에게 우리는 하염없는 기대를 합니다...엄마의 실수는 용납이 잘 되지를 않고...질문에 척척 대답하지 못하면 '엄마가 그것도 몰라'의 무식장이 엄마로 둔갑해 버려요.....
엄마도 엄마라는 걸 처음 해 보았다는 것을....
엄마도 그저 한 여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는데는...이해하는데는 .....세월이라는 것이 경험이라는 것이 필요 하다는 걸 몰랐어요....
어쩌면....선생님은...엄마 다음으로 이런 틀에 가둬놓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위의 영치님 말씀처럼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절대 늙지 않는 그 마음 한 자락이 있다는거....
어쩜 선생님들께 제자는 받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더 크다는 거... 그것을 마음 한구석에 고이 접어 넣어주시면.....못난 학생에게도 좋은쌤이시지 않을까요?
우리함께님 좋은쌤이신거 압니다 저 ^^
낮달 2011/12/23 15:55 R X
모두들 공부하던 시절에 대한 심상치 않은 기억들은 하나씩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평범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차이일 뿐이지요.
교직에 있기 때문에 교사들에게 오는 돌팔매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는 게 다를 뿐 교사들도 교사 내부 사회에 대해서 알 만큼은 알지요.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같은 교사로서도 연민을 금치 못하게 하는...
때로 그런 이들의 역할은 반면교사로서 기능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벨라줌마 2011/12/23 22:24 X
네 그러믄요....좋은 교사들이 더 많다는거 알기에 혹 아직도 나쁜교사...뭐 이런 기사나면 들어가 보지도 않고 맘부터 아파져요...
사실 머리가 큰 이후로는 욕도.. 못합니다...몇몇의 교사들 때문에 좋은 선생님들까지 한부류로 엮을 수 없는 일인걸 알았거든요...
학교재단에 문제가 많은 학교였어요....그렇다보니 소신있는 선생님들이 설 자리가 없었던거 같구요. 고1 열일곱살짜리가 재단비리가 뭔지 알지 못한 시절입니다....
WallytheCat 2011/12/23 16:40 R X
상처 받지 않고, 힘들지 않은 청소년기를 가진 사람은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싶어요. 홀몬의 변화, 그에 따른 심신의 변화와 변덕, 게다가 배워야 할 많은 것들까지 많은, 일생 중 가장 힘든 격동기라 하겠지요. 개인적으로 전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기도 하고요.

그 힘든 시간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는 남지요. 흉터가 제 살과 구분이 안 될 정도의 치유까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모두의 숙제로 남는다면 남는 것이겠습니다.

낮달님 댁에 가 올리신 글 함 읽어봐야겠습니다. ^^

벨라줌마 2011/12/23 22:31 X
ㅋㅋㅋ 저만이 아닌 여기 한분 더 계시니 왠지...편이 한명 생긴듯 합니다....저에게는 정말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없는 시절이었거든요... 가끔은 여고동창들 이야기, 재미있는 사연들 볼때면 부럽기도 해요.
그래도 국민학교 중학교 대학시절 내내 좋은 추억 가득하기에 샘은 안나요....
프라우고 2011/12/23 21:18 R X
제 학창 시절엔 겁이 많아서 순응하며 착하게만 굴었어요. 겁많고 소심하고 그런... 그래서 조용히 책이나 본는 그런 타입?


그러다 아들이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는 걸 보다가 정말 생각이 많아졌어요.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아들을 보면서...



벨라줌마 2011/12/23 22:44 X
힘겨운 사춘기를 보내는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 마음은 어떤말로도 설명못하겠지요?
그런데 그때는 부모님 생각은 안중에도 없어요....
못하는거지요......
저 역시 큰 문제거리를 만들지는 않았으나....혼자 힘겨워하는 와중에 보여진 부분도 많았었겠지요?
하긴....돌이켜 생각해보니...학교간다고 나간 딸이 학교는 안가고 인천이니, 안산이니가서 바다구경하고 돌아와 시침 뚝하니 떼고 독서실에 앉아있었으니....저희 엄마 속 많이 상하셨을꺼에요....

ㅋㅋㅋ조용하지는 않았지만....수업시간에 교과서 대신으로 읽은 것이 문제지만...ㅎㅎ 저도 여고때 토지, 태백산맥등 주로 장편대하소설은 그때 다 띠었어요..^^
너도바람 2011/12/23 22:41 R X
교사에 대한 불신, 폭력에 대한 분노. 별 기대없이 순전히 직업으로 선택한 교직에 들어와서도 한참 힘들었어요.(그래서 우리들은 서로를 자생적 요원이라 불러요) 그렇다고 나설 처지도 아니니 비겁하게 눈 돌리고... 저도 고스란히 남아있던 중학교 때 체육 선생에 대한 상처를 썼다가 지웠지요. 그리고 한 참후에 개망초님한테 댓글로 단 적이 있어요. 그 분이 체육 교사라는 것만으로도 다 치유가 되던걸요. 나도 알게, 모르게 아이들한테 상처를 입힐거예요. 나도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이라 때론 상처를 주고, 때론 상처를 입는다는 말로 시작해요. 그리고.. 혹 모르고 준 상처 용서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끝내지요. 오늘~~~ 방학했어요. 피융~~~
벨라줌마 2011/12/23 22:55 X
어른이 된다는게...고마울때도 있어요....
그때의 제 선생님들이 지금의 제나이지 않았겠나 그런생각을 하면요....물론 더 나이가 있으신분들도 계셨지만...... 내 동창이다.... 내 친구다 생각하면....교사이전에 그들도 나와같은 사람이고 여자이고 혹은 남자이고.....그냥 말하지 않아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많은데..... 어린시절 학생이었던 내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너무 큰 벽 이었죠....
요즘 교사들은 너도님처럼 나도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이라 때론 상처를 주고 때론 상처를 입는다는 말로 시작한다는 점이 가장 감동이에요...
저 여고때만해도 권위주의 가득하신 어른교사들이 참 많으셨거든요...너도님때는 더 했죠? ㅋㅋㅋㅋ

와 신나겠다~ 이제 공항으로 고고싱 하실일만 남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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