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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Easter. 본문

Life/Russia

Happy Easter.

벨라줌마 2018. 11. 18. 16:13

2017/04/16 21:39

아마도 내가 아는 영어 단어 중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Happy 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쉬운, 예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친근하기 그지없는 단어는.... 그냥 이곳, 저곳, 이 상황, 저 상황 어디에고 갖다 붙여 사용하여도 제법 잘 어울린다. 참 좋은 성격을 품은 단어이다.

Happy Easter!

오늘은 부활절이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그 분이 아주 아주 오래전 힘겨운 고통 속에 죽임을 당했고...... 내가 믿는다고 하면... 과학적 증거를 대라는 당황스러운 상황과 마주하게 만드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저 굳건하게..... 그냥 거기에 여기에 내 마음에 니 마음에 계셔.... 라고 참으로 보잘 것 없는 대답을 하게 만드시는 분.... 그 신의 품으로 가신 날이다...

허파에 바람들어 못된 것부터 배우는 어리석은 나는...... (참으로 미안하지만...) 다수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년 2회 성당에 발길을 주는 날.... 성탄절과 부활절. 그 2회 중 1회에 해당하는 부활절을 맞아..... 올 해 들어 처음으로 성당을 찾았다. 나이롱 신자의 또 남 탓하기는 오늘도 해당된다.

모스크바 지하철 1905년 거리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카톨릭 성당 한 곳이 있다. 모스크바에 온 첫 해 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이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참 고마운 성전이다. 성당을 향하는 첫 길목.....4년 전 땅을 파고 있었던 공사현장.... 그 횡하고도 분주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번쩍 번쩍 완공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다...... 가만 생각 해보니..... 이 길을 다시 찾은 것이 1년도 넘은 것 같다.....

너무 오랜만에 찾은 탓인가..... 미사 시작 시간을 헷갈렸나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묵상의 시간도 갖고 미사 준비에 분주한 사제분들, 성가 담당 성당 신자분들을 멍하니 여유로이 보겠다 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왠걸...... 성당 안에 발길도 들이지 못하고 먼 발치에서 까치발을 연신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겨우 부활절 미사를 봤다....

성당 미사 순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을 건네는 인사 나눔의 시간이다. 오늘 처음 본 낯선이와 그리고 늘, 자주 보아 익숙한 이와 하등의 차별없이 나누는 이 따뜻한 인사의 시간은 설명이 힘든 안식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낯선이와 나누는 이 따뜻한 인사 한마디가 경직되어 굳은 억지 미소가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로.....의  전달 가능한 시간이 나에게 시작된건..... 정말이지 아주 최근이다.......

오늘.... 익숙하여 편안한 나의 그대들인 베비라쿠아씨도 없고 세레나도 없이 홀로... 낯선이들과의 어색한 인사의 시간...... 젠장.... 러시아어로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공부하고 연습 좀 미리 할껄..... 할 수 없이 그냥 내 머리속에 저장되어 있는 언어들로 인사말을 건넨다. 눈에 보이는..... 생김새라는 인식표와 미스매치면 어떠리......

"평화가 함께 하시길.." "Peace be with you" "Pace sia con te"

복불복 언어로 인사를 받은 사람 중 나를 정신나간 사람으로.... 놀란 토끼눈으로 보는 러시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어를 몰라도 뜻이 통하는 이 귀한 깨달음은 이 곳, 성당 미사, 인사 나눔의 시간에도 있다.

부활절 미사가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파가 빠져 나갔다..... 늘 그렇듯..... 성전이 한 눈에 들어오는 맨 뒤 마지막 의자에 앉아....... 성당에서 멍때리고 앉아 있기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신께.... 원망의 기도인지.... 하소연인지.... 떼쓰기인지 주절대는 당사자인 나 자신도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하기 힘든 마음속의 말들을 아무렇게 막 쏟아낸다.....

그리고 신께 당당하게 요구했다. 제발 명확한 답을 달라고..... 물고기 잡는 법은 더이상 필요 없으니 그저 물고기를 잡아 내 손에 좀 쥐어 달라고...... 물고기 잡는 법.... 고민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고....이제 지겹다고..... 그냥 숨 좀 편히 쉬게 답을 달라고.....

하지만... 오늘도 성당안.... 그 묵상의 시간 속 신은 나에게 명쾌한 답을 안. 주. 신. 다.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답답하니..... 배를 채워야 한다......

성당에서 나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눈에 익어 익숙한 한 체인 카페로 아침겸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베이컨과 치즈가 잔뜩 들어간 오물렛과 러시아식 팬케익 블린을 시켰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 주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러시아 청년(국어사전에 명시된 청년의 첫번째 의미: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이 블린을 가져다 주며 쪽지를 건넨다.....

'맛있게 드십시요'

한중일 어느 나라 출신 아줌마인지 한 눈에 알아보기야 조금 힘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꺼내 읽은 책. 그 책의 한국어 글씨체를 보고 한국 사람이다 확신이 들었나 보다.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아직 초급단계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나 '맛있게 드세요'를 목소리 내어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그저 짐작한 것이다.

성당안에서..... 꾸역꾸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올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감동의 전율이 느껴져 가방 속 사진기를 꺼냈다.....꾸역 꾸역 접시에 한가득 놓여있는 블린을 입속에 구겨 넣었다....... 젠장.... 한 눈에 반할 멋진 이성에게 "아름다우십니다. 시간되시면 차 한잔 하실래요?" 고백의 쪽지를 받고...에잇...나 유부녀 애엄마인데... 이러심 아니되옵니다의 영화속, 상상속 고뇌(?)의 상황........... 아닌데..... 심장이 쿵쾅 쿵쾅... 거기에 눈물까지 나오려 하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가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음식 값을 서둘러 지불하고 도망치듯 식당을 나왔다.... 거기서 울음보가 터지면.... 이건 앞뒤 정황 연결성이 너무 없어 그냥 정말....미친사람 되는 상황인거다......  

그래도 그녀의 그 소중한 고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진 문장... 그 문장 밑에 답문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나는 오늘 당신덕에 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낼 것 같습니다....."라고 말이다.

신은 오늘도 나에게 커다란 물고기를 손수 잡아 건내주진 않으셨지만....... 작은 송어 한마리 잡을 수 있는 답은 주신 듯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신의 존재는 늘 멀게만 느껴지지만..... 그 분이 보내신 날개 없는 천사는 언제나...이렇듯 내 주변에 가까이 존. 재. 한. 다.

"I am happy."

 

WallytheCat 2017/04/17 01:40 R X
새로 지은 고층건물이 성당인 줄 잠시 착각했어요. 성당이 아름답네요.
그찮아도 밖에 나가 뜀박질 마치고 귀가한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일년에 두 번 교회에 가는 사람들로 교회 앞이 사람과 차로 몹시 북적인다고요. 모스크바도 비슷한 상황이었나 봐요. ㅎㅎ

세상에나! 그런 감동적인 메시지 받고 안 우는 사람도 있으려고요. 늘 깨어 있어야 도처에 널린 천사들을 만나는 거겠지요. 벨라님 포스팅 읽고 저도 감동 무지 받았음을 알리는 바입니다. 늘 행복하기~!
벨라줌마 2017/04/22 02:56 X
현재 삐까 뻔쩍 고층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고 있는 상황의 모스크바이기는 하나... 아직까지 카톨릭 성당, 러시아 정교회 예배당은 오래되고 낡은 그래서 고마운 모습으로 있어주고 있습니다. 참 다행이지요....^^
늘 깨어 있어야한다는 왈리님의 가르침에 오늘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입니다..... 큰 가르침 작은 보답..... "감동"...... 저는 오늘도 행복합니다!
메이데이 2017/04/18 09:50 R X
여기서도 가끔씩 한국말 하는 중국 젊은이를 만나요. 반갑죠. 반갑더라구요.^^
벨라줌마 2017/04/22 03:01 X
참 반갑고 또 반갑지요! 크지 않은 땅덩이...그것도 둘로 쪼개져 어디다 대놓고 국토 크기 자랑은 엄두도 못내는 그 작은 나라 사람들이 오랜시간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이 큰 땅덩어리의 인구수를 보태고 있는 사람의 입으로 혹은 저렇게 글로 만나게 되는 일..... 참... 감사하지요.... 이정도면.... 한글 사용 국적자 자부심 느껴도 되겠지요? ^^
catalunya 2017/04/20 11:54 R X
아! 감동^^
차가운 러시아에서, 따뜻한 러시아인이로군요!
한글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벨라줌마 2017/04/22 03:04 X
차가운 나라의 따뜻한 사람들..... 감히.... 그들이 러시아 인 이라니깐요! 라고 크게 외칠 수 있는 일 인! 여기 있어요~~~ ^^
한글도 반갑고~~진주씨도 늘 반갑고~~~!!!!!^^
알퐁 2017/04/20 13:49 R X
사진 먼저 보고 어떤 잘생긴 남성이 작업 걸었다는 이야기로 지레짐작했어요 ^^
벨라줌마 2017/04/22 03:08 X
하하하하하하하하
아쉽습니다.... 마지막 사진 한 장과 함께...... 멋진 청년에게 이런 쪽지를 받은 어느날..... 행. 복. 했. 다. 로 포스팅 올렸어야 했는데...... 늘 말이 많아지면.... 달달 로맨스 혹은 아슬아슬 불륜 장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 훼방꾼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런 된장입니다!!!ㅎㅎㅎㅎㅎ
너도바람 2017/04/21 00:19 R X
"I am happy." 저두요~~~
벨라줌마 2017/04/22 03:10 X
I am happy, you are happy, we are happy!!!!! 뭘 더 바라면 욕심이 과한 상황 되는 상황입니다 그쵸~~~~? ^^
제비 2017/04/30 11:54 R X
러시아 청년이 저보다 글씨가 더 또박또박하네요
전 글씨가 거지같거든요 ㅠㅠ
수첩 찢어 쓴 쪽지 너무 귀여워요~
벨라줌마 2017/04/30 15:25 X
ㅎㅎㅎㅎㅎ 저도 요즘 거지같은 제 글씨체 때문에 속상합니다. 손글씨도 연습 반복을 안하면 한없이 못생겨지는구나 또 깨닫고 있습니다 ㅎㅎㅎ
저 청년은 요즘 글씨 연습을 자주 하는 듯요. 딱 보면 고된 연습의 결과가 보이잖아요! 대견하고 멋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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