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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Netherlands

Texel in March 3

벨라줌마 2023. 3. 18. 17:03

외국어를 구사하며 발음 때문에 주눅이 들 때가 있다. 정확하게 발음하고 싶어 애를 쓰고 긴장할 때가 많다. 아마도 시작은 이탈리아어를 처음 배워 사용하며 발음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 시기부터 인 듯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쑥스러움의 극치… 거울까지 보며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발음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연습했었다. 내 시댁 식구들은 늘 그런 나를 칭찬해 줬다. 베비라쿠아씨는 내가 틀리게 발음해도,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어도 고쳐주거나 ‘그게 아니고’로 시작되는 대화 끊음을 시도한 적이 없다. 이러한 도움과 응원은 기를 살려주는 격려, 자신감이 생기는 원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애쓰고 노력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 아이러니다. 그저 성격 탓을 해본다.
러시아어로 말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매우 주저하는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온다.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는데 자꾸 주저하게 된다. 그건 어쩌면 부정확한 발음이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언어의 이중성 그 오류의 두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어를 소통의 언어로 처음 사용하면서는 분석하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맞는지 틀린 지 분간할 수도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말 그대로 영국의 작은 항구 마을에 살았던 20대 초반의 내게 영어는 생존의 언어였다. 기가 죽으면 생존이 불가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내 발음보다 훨씬 후진(?) 영어를 너무도 자신감 넘치게 사용하는 유럽 출신의 유학생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얻었던 모양인지(이탈리아 억양 베비라쿠아씨의 영어 구사는 내게 최고의 위로였음을 고백한다) 강하고 억센 영국 남부 발음에 저들이 진정 영어가 모국어인 영국인들이 맞는가 혼란이 들었던 탓인지… 내 엉망진창의 영어 실력에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20대를 보냈다. 허나 30대의 나는 러시아어에서 기가 팍팍 죽었다. 40대의 현재 내 네덜란드어도 만만치가 않다. 하루하루 자신감은 급속도로 저하된다.
어째야 좋을지 고민이 드는 요즘…. 나름 애쓰며 살고 있는 20년 차, 다국어 사용자의 길고 긴 언어 사용 후기담이다.

Texel.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텍셀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테슬이라고 발음한다. 둘 다 맞다. 자격지심인지 진짜 테슬에 다녀왔다 자랑하고픈 것인지 이 짧은 두 단어를 블로그에 쓰는데도 고민이 되어 길고도 긴 넋두리 서문을 쓴다.

북해 남동부에 위치한 바다이자 습지인 바덴해(Wadden sea)는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3개국에 걸쳐 있으며 길이가 약 500km에 달한다. 우리의 숙소가 있던 덴 핼더 시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도착하는 테슬 섬은 모두 바덴해에 걸쳐 있다.

날이 좋아 신난 나와 세레나는 겁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배를 타고, 바다 건너 테슬 섬에 다녀왔다.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음에 테슬 선착장에서 너무 멀지 않은 한 곳을 찍어 간 마을이 덴 호른( Den Hoorn)이었다. 참으로 예뻤다. 내 두 다리는 거부할지언정 이 악물고…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게 하는 풍경이다.

왕복 7시간을 꼬박 달려 다녀온 테슬 섬에서의 하루를 마감하는 밤하늘… 해가 더 떨어지기 전 숙소를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두 행성이 가까이 붙어 보인다는 의미진 그날이다.
2023년 3월 2일 밤 네덜란드 북동부 끝자락 덴 핼더시의 하우스다우넌 마을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에 목성과 금성이 크게도 반짝인다. 불빛을 찾기 힘든 시골 마을의 밤하늘은 검디 검다.

17년 후, 2040년 9월 2일… 쉽게 장담할 수 없는 미래… 참으로 멀어 보이는 미래의 날짜지만… 목성과 금성이 또다시 크게 반짝이는 하늘을 다시 꼭 함께 올려다보자고… 열 살의 세레나와 마흔셋의 나는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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