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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째 장

벨라줌마 2019. 9. 29. 16:44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기분은 묘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반도, 거기에 대륙으로 이어지는 육로가 막혀 있는 나라에서 태어난 나는 국경을 넘기 위한 교통 수단으로 비행기를 자주 이용한다. 내 고국을 떠나 살면서도 한 곳에 정착하여 살지 못하는 팔자 덕에 나라와 또 다른 나라를 이동하는 수단은 역시나 기차나 버스가 아닌 비행기가 된다. 내 사정을 잘 모르는 이가 들으면 팔자 좋은 소리를 한다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제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내겐 고역이다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를 가기위해 기차를 타면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2시간 정도 지나 구다가이(Gudagai/Hudahaj/Гудогай)역에 서 30-40분 가량을 정차한다. 구다가이 역이 출입국 관리소가 위치한 역이기 때문이다.

제복이 잘 어울리는 출입국 관리 직원들이 기차에 올라 여권에 도장을 찍으러 직접 돌아 다닌다. 공항 여권 통과대 줄을 길게 서 이동의 주체자가 늘 내가 되었던 과는 반대가 되는 이 상황이 꽤 재미난다. 가는 길 내내, 내 짐도  나도 무사히 잘 도착 할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도 신난다. 가는 길 내내, 긴장되지 않는 창 밖 풍경을 마음 껏 볼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기분은...... 기대 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건 쾌청한 날도, 고즈넉한 벨라루스 시골의 풍경도, 최종 목적지 이탈리아를 가기위해 잠시 거쳐가는 환승지로의 빌니우스에 대한 기대도...... 그저 다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일년여간 이미 예상했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생각했지만 베비라쿠아씨의 새 발령지로의 가족 이동은 역시나 힘들었다. 녹초가 된 내 육신과 마음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오니..... 환승지로서 머문 빌니우스에서의 삼일간에 시간이 자꾸만 떠오른다.  

PS. 2019년 9월 29일 일요일 아침, TV로 만화를 보고 있는 세레나 옆에 앉아 나도 뉴스를 찾아 읽는다. 컴퓨터 스크린을 보며 자꾸 웃고 있으니 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뭐봐? 왜 자꾸 웃어? 재미있어? (내가 읽고 있던 촛불 집회 기사 속 사진을 보며) 누구야? 다 엄마 친구들이야? 사람들 너무 많은데? 한국이야? 엄마는 엄마 친구들 사진 보면 좋아하잖아!" 

"하하하하하..... 엄마 친구들 맞아. 한국도 맞아.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은 다 친구인거 맞아. 친구들이 그립네....... 친구들은 다 저기 있는데 엄마는 여기 민스크에 있어서 조금 속상해......"

"엄마! 내가 있잖아! 같이 한국 가자!"

난 아침부터 눈물 바람이다. 지난 한 달간 계속 눈물 바람이다...........

국민이 아깝지 않은 국가가 내 고국임이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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