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Russia2018. 11. 24. 20:30

2017/07/30 15:51

분홍색 버스

분홍색 버스가 생긴 뒤로는 현성에 갈 때 더 이상 미니버스를 타지 않았다. 미니버스는 한 사람당 20위안이었지만 분홍색 버스는 단돈 10위안에 불과했다. 짐이 조금만 커도 별도로 추가요금을 받는 미니버스와 달리 분홍색 버스는 짐을 마음껏 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분홍색 버스는 제시간에 맞워 출발했다. 사람이 꽉 차야 출발하는 바람에 늘 차질을 빚었던 미니버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분홍색 버스'는 중형의 중고버스였다. 뚱뚱하고 유쾌한 운전기사는 저 멀리서 울퉁불퉁한 눈길을 어렵사리 뛰어오는 사람이 보일 때마다 신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이렇게 외쳤다. "하하 10위안이 왔어요.!" 차에 탄 꼬맹이들은 한목소리로 "워워~"하고는 말고삐를 당기는 소리를 흉내 냈다.

우룬구 강 일대는 마을이 드물었지만 매일 분홍색 버스를 타고 현성에 가거나 차쿠얼투 마을에 가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차는 매일 아침 5시 전에 출발해서 칠흙같은 어둠에 싸인 마을을 하나하나 지나갔고, 차의 경적소리가 울리면 길가에 창이 하나 둘 불을 밝혔다. 앞마을에서 경적 소리가 울려 퍼질 때쯤이면 뒷마을 사람들은 이미 차에 탈 채비를 끝냈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가져갈 짐은 발치 눈길 위에 쌓아 놓은 채, 눈으로 둘러쌓인 도로변에 서서 차가 올 때만을 기다렸다. 아커하라는 이 일대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분홍색 버스가 가장 먼저 이곳을 지났다. 그래서 맨 처음 차를 타는 사람은 늘 나였다. 차 안은 텅 비고, 얼음장같이 차디찬 한기에 허연 입김이 뿌옇게 퍼졌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 때문에 운전기사가 목소리를 높여 아는 척을 했다. "아가씨, 어때? 괜찮아?"하면서 조수석에 놓여 있던 무거운 양가죽 조끼를 집어 내게 던져주면 나는 잽싸게 받아 무릎을 덮었다.

짙은 어둠이 깔려 있고, 눈보라는 휘몰아치고, 고비 사막은 까마득히 펼쳐져 있고, 길가에는 나무 한 그루 없다. 운전기사는 대체 무슨 수로 길을 식별해내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눈으로 뒤덮인 길 위에서 눈으로 뒤덮인 길 아래로 운전해 가는 법이 결코 없었다.

동이 틀 무렵이면 차 안은 벌써 사람들로 가득 핬다. 하지만 여전히 추웠다. 오랫동안 영하 2-30도의 차가운 공기 중에 있다 보니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그때 문득 첫 번째 줄 좌석과 좌석 앞 엔진 덮개 위에 뚱뚱한 노인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너무 따뜻해 보였다! 나는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사람들 틈바구니를 헤치고 두 사람 사이에 난 빈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 두 사람 발치께 놓여 있는 짐 위에 앉았다. 그러고 나니 한결 아늑했다. 얼마 안 가 두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을 알고 어찌나 민망하던지......

가는 길 내내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꼭 잡고 있던 부부는 맞잡은 손을 마땅히 놓아둘 곳이 없자 아예 내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손을 놓아둘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나도 그냥 노인 다리 위에 올려 놓았다. 잠시 뒤 노인은 자신의 큰 손으로 내 손을 꽉 쥐더니 내 언 손을 녹여 주었다. 그러고는 뭐라고 몇 마디 중얼거렸다. 그러자 노부인이 서둘러 내 다른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가는 길에 나는 몇 번이나 손을 빼보려고 애썼지만 그때마다 노인들 손에 도로 붙잡히고 말았다. 왜 그런지 내 손은 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차 안은 늘 사람들로 붐볐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다. 앞쪽 좌석은 늘 노인들 차지고 젊은이들은 통로 쪽에 놓인 짐 위에 앉았다. 아이들은 두꺼운 담요가 깔려 있는 엔진 덮개 위에 서로 꼭 붙어 앉았다. 비록 서로 잘 모르는 사이라도 그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나이가 많아 봤자 겨우 예닐곱 살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가는 길 내내 옆에 있는 서너 살짜리 아이의 등 뒤에 짐을 받쳐주어 아이가 좀 더 편안하게 앉아 갈 수 있도록 돌봐주었다. 장갑을 벗어 던지는 아이가 있으면 조금도 귀찮아 하지 않고 장갑을 주워 아이 손에 끼워주었다.

내 맞은편에는 볼이 빨갛게 튼, 커다란 파란 눈의 두 살배기 꼬마가 앉아 있었는데 줄곧 나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두세 시간 동안 자세도 바꾸지 않고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내가 큰 소리로 물었다. "누구 집 아이니?" 대답이 없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아빠가 누구야?" 파란 눈의 아이는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 손이 차갑지 않은지 만져보려고 손을 내미는데 뜻밖에 아이가 두 팔을 벌리며 나를 향해 몸을 기대 왔다. 내가 안을 수 있게.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아이의 몸은 아주 조그맣고 여렸다. 아이는 내 품에 안기자마자 작은 머리를 떨어뜨리고 내 팔에 기댄 채 잠이 들어버렸다. 나는 내 품에 안겨 평온하고 외로운 꿈을 꾸고 있을 아이가 깰까 봐 가는 길 내내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아러타이의 끝자락 마지막 장-

 

한장 한장 아껴가며 읽었다. 마음이 먹먹해져 책장을 놓고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게도 했다. 아마도 지금, 현재, 이 시간,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었나보다. 리쥐안 작가에게 향한 한 없는 존경심은 말해 무엇 할까만은........ 개인적으로...... 내 마음을 흔들고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내 모국어로...... 한국어의 아름다운 문체로, 그 정서로.... 내 마음 가득 아러타이의 끝자락이라는 외국서적을 불편함 일도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고스란히 전달한 차현경 번역가에게 한 없는 존경심을 표한다.        

2017년 7월 23일 즈베니고라드 한 낚시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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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벨라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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