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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Netherlands

겨울의 한가운데 in 암스테르담

벨라줌마 2023. 1. 26. 04:41

모스크바와 민스크에서 보낸 지난 십 년의 겨울.
길었다. 추웠다. 힘들었다. 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이라는 낭만 단어는 내 부정적인 감정의 기억을 왜곡시킨다.
모스크바와 민스크의 겨울은 하얀 세상, 눈으로 덮인 동화 속 마을이었다. 아이는 걸음마를 떼며 스케이트와 눈썰매를 탔고 아빠와 얼음낚시를 했다. 시베리아와 알타이의 겨울 장관, 그 자연의 아름다움에 베비라쿠아씨 부부는 할 말을 잊었고 아이는 눈밭을 뒹구르는 가장 재미진 놀이를 참 좋아했다. 얼음이라는 투명한 결정체로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추위였지만 그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저 모든 것이 재미졌다.
하지만 고달팠던 긴 겨울, 그 중심에는 분명 추억을 공유했던, 함께 욕하고 함께 좋아하고 함께 시간을 나누었던 친구들이 그리고 가족이 있었기에, 그랬기에 ‘아름다운’ 시간으로 회자될 수 있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겨울이 춥다.
힘들고 괴롭다. 참으로…. 길기만 하다…
한숨, 두숨이 나오고 한 걸음, 두 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AC가 나온다. 교양 있는 여인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지만 오늘도 ‘AC 추워’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우리 집 주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피사체…. 설거지를 하다 슬그머니 장갑을 벗고 전화기의 동영상 기능 버튼을 누르게 만든다. 퍼붓는 겨울 빗줄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제 할 일에 몰두하는 새를 하염없이 지켜본다. 지난봄, 우리 집 건물과 옆집 건물을 잇는 작은 창고 건물 옥상(?)에 초록이들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집에 있던 화분 속 흙과 꽃을 피우고 진 잡초 더미를 무성의하게 그 공간에 던져 놓았다. 기특하게도 이것들이 잡초 풀무덤 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을 오래 지켜본 새 한 마리가 둥지를 틀 모양이다.

집안일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몰려나오는 시사 프로그램, 뉴스를 틀어논다.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로 화면 속 진행자에게 패널들에게 말대꾸를 하고 있는 아줌마 모드 상황 속, 후두둑 후두둑 얼음비가 쏟아져 창문가로 가니 어느새 함박눈 모양을 만들어 눈이 내리신다. 짧았지만 눈이 펑펑 내리는 낭만적인 시간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는 순간만큼은 우아하고 교양 있는, 사랑의 마음을 마구 날리는 달콤 다정한 여인으로 변신한다. 조금 전 티비에 대고 욕짓거리를 날리던 어그레시브 아줌마는 없다.
AC 추워를 반복재생하는 아줌마도 없다.

함박눈 내린 날 찍은 동영상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에게 보냈다.
모두…. 따뜻하게 반기는 답문을 보낸다.
그중, 지금 모스크바 시내 중심에 있다고 큰 딸아이가 다니는 대학교 근처, 한식 분식집에서 인기 최고의 ‘한국 길거리 음식’을 먹는다며, 딸아이의 최애 음식이 자신의 최애 음식이 됐다고 친구 타냐가 실시간 핫도그 사진을 찍어 답문 한다.


그리운 친구들은 최근에 본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메세지로 품평하고, 아이들이 케이팝을 좋아해서 같이 듣는다며 너 이 노래 알아?를 묻는다. 페이스북에서 한정식을 처음 접한 네덜란드 부모님을 찍은 영상을 보고 나 홀로 웃다 공유해야겠다 싶어 공유하니 우리 시아버님은 장문의 메시지로 한국 여행을 회상하며 반가운 마음을 전하신다.

나는 행복한 겨울을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노력을 해야 할 만큼 크고 작은 삶의 고난 속에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일은 한숨의 연속이지만….
춥고 긴 겨울을 나고 나면 봄은 온다.
봄이 돌아오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나도 당신도 우리도 모두 잘 버텨내길….

암스테르담에서 보내는 춥디 추운 첫겨울이……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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