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Russia2019. 9. 24. 10:21

Исаак Левитан (Isaac Ilyich Levitan) "Над вечным покоем"(1894)

 

내가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대략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우선 러시아에 발레와 음악은 있지만 미술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본다고 했다. 러시아를 방문해서 미술관을 한 곳이라도 구경 한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 위대한 세계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쉽게 수긍할 수 있으리라. 한편 칸딘스키와 샤갈, 말레비치는 잘 알면서 정작 그들이 러시아인들이며 러시아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작가라는 사실에 대해선 대부분 모른다.

현대 미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들을 배출해 낸 나라인데도 러시아 미술이 널리 소개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지금까지도 서양 미술사는 대부분 러시아 및 동유럽의 미술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 레핀, 세로프, 브루벨 같은 세계적 명성의 작가들조차 서양 미술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그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 이전에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정권 수립과 더불어 러시아 미술사는 서유럽 미술사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상이한 발전 경로를 가게 되었다. 서로 대립되는 두 이데올로기는 서로의 약점을 발견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회주의 미술에 대한 경시는 안타깝게도 그 이전의 러시아 미술 자체를 서양 미술사에서 누락 시켰다.

서양 미술사의 고전 중의 고전인 E. 곰브리치의 'The story of art'(1950)를 우리가 굳이 '서양 미술사'라고 번역한 이유는 미술사를 인식하는 주체의 차이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의 미술을 포함한 동양 미술 전반이 누락된 반쪽의 역사니 그 책을 단순히 '미술사'라고 하기에 부족함을 느꼈던 탓이리라. 곰브리치는 위대한 미술사가였지만, 자신들의 역사가 곧 예술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강대국 위주의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미술사 서적 역시 러시아 미술에 관한 한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뿐 아니라 그로부터 야기된 물리적인 문제도 한몫했다. 미술사가 학문으로 본격적으로 체계화되어 갈무렵 세계는 바야흐로 동서 냉전의 급격한 이데올로기 갈등을 겪고 있었다. 자료를 위한 접근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니, 이는 또 서유럽 미술사가들의 한계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대상에 대한 무지는 대상에 대한 경시로 이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보이는 또 하나의 반응은 보다 지적인 것이다. 서유럽 미술과 다른 러시아 미술의 특징이 도데체 무엇이냐고 제법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삶이 한마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건가? 그럴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 하는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쳐 간다. 미술에 대해서 물어 보았는데 왜 삶에 대한 생각을 하냐고?

나는 한 번도 미술을 포함한 어떤 문화 예술적인 행위들을 삶으로부터 분리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삶과 미술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러시아 미술 그 자체의 내재적 속성이기도 하다. 나를 열광시키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뜨린 러시아 미술 작가들이 그토록 미술에 담고 싶어 했던 것은 바로 '삶' 자체였다. 러시아의 민속학자 니콜라이 르보프의 말을 인용해 본다.

외국 땅에서 모든 것은 계획되어 있다.

말은 숙고되고 걸음걸이는 평가된다.

하지만 우리 러시아인들 사이에는 격렬한 삶이 있다.

우리가 하는 말은 크게 울리고 불꽃이 튄다.

Василий Перов(Vasily Perov) "Тройка" (Ученики мастеровые везут воду 1866)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고 말과 행동이 크게 울리고 불꽃처럼 튀는 나라. 이 나라의 '격렬한 삶'은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동양인들에겐 서방이지만, 서유럽인에게는 동방인 나라. 유럽에서 가장 늦게까지 존속한 봉건제, 사회주의 혁명의 실험, 혹독한 내전과 세계 대전, 사회주의의 붕괴와 급속한 개혁. 러시아는 숨 막힐 듯한 격변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역사를 이어 왔다. 이런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러시아인은 스스로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했다. 앞의 르보프의 시에서도 서유럽과의 비교 속에서 러시안인들의 특징을 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인들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달라질 때마다, 그들의 정치적 태도와 문화적 태도가 달라졌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러시아 문화를 성(성스러울 聖)과 속(풍속 俗)의 대립이라고 요약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 러시아인들은 두 개의 조국을 갖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이다." 라고 말했다. 토마스 만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은 일맥상통한다. 러시아 정교에서도 전통에 근거한 러시아는 성을, 서유럽화된 러시아는 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두 요소는 사상적으로는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슬라브주의)과 서유럽의 전통(서구주의)의 대립과 충돌이며, 러시아의 정신 세계를 이룬다. 천 년의 러시아 문화사는 러시아인들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물어 가는 과정이었으며 러시아인의 삶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고 답이 주어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슬라브주의자이건 서구주의자이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은 톨스토이의 말대로 "진실하게 가는 것 혹은 더욱 중요한 것은 러시아에서 진실하게 사는 것"에 대한 열망이었다. 러시아 지식인과 문화 예술인 모두는 열망에 충실하게 반응했다. 그들의 실천은 이에 대한 응답이었으며 그 응답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러시아의 위대한 문화의 사상적 원천이 되었다.

Nikolai Yaroshenko "Life is everywhere"(1888)

 

러시아적인 '격렬한 삶'의 흔적은 미술에도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러시아 작가들은 삶과 미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식주의자라고 비난을 받는 순간에도 철저하게 삶과 미술에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농노제의 존속과 강압적인 차르라는 정치체제에 대해서 러시아 예술가들은 책임 있는 지식인의 사명감을 가지고 반응했다. 인텔리겐치아로서 민중들의 삶과 함께한다는 대의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입으로 불붙은 러시아인들의 조국애는 '민족에 대한 봉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만들었다. 귀족 출신 시인 푸슈킨이 노래한 '시대의 예언가'로서의 예술가의 책무에 대한 관념은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의 모범이 되었다. '이동파'와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이러한 러시아 미술의 지식적인 특징을 가장 잘 보여 준다.

표트르 대제의 개혁 이후 러시아 작가들은 탁월한 재능으로 단숨에 서유럽 미술의 정수에 도달했다. 표트르 대제는 뛰어난 서유럽의 작가들을 자신의 궁전으로 초청했으며, 재능 있는 러시아 작가들을 서유럽으로 유학을 보냈다.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고전주의가 동시에 수용되면서 독특한 러시아적인 혼합을 이루어 냈다. 러시아와 서유럽 발전 경로가 달라지는 것은 이동파의 등장과 더불어서다. 파리의 작가들이 캔버스와 화구를 들고 햇빛 찬란한 야외로 나가 인상주의자들이 되었을 때 러시아 작가들은 캔버스와 화구를 들고 민중들의 삶으로 들어가 이동파가 되었다. '러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대의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리고 '러시아 사회에 대한 애정을 함양하는 것'이라는 이동파의 목표는 러시아 지식인들의 민중 지향성을 보다 분명히 보여 준다. 민중들의 삶을 묘사하는 풍속화가 19세기에 러시아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로 부각된 것은 당연하다. 러시아의 풍경화에서는 나무와 숲 냄새 사이로 사람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나온다. 1870년에 결성해서 1923년 마지막 전시를 갖고 혁명 정부 하에서 조직 개편을 위해 해체되기까지 무려 52년간 존속했던 이동파는 러시아 미술의 성격을 가장 근본적으로 규정짓는다. 삶으로 치열하게 육박해가려는 화가들의 의식은 회화에서 사실주의적이고 서술적인 성격을 최고의 가치로 만들었다.

세르게이 루치슈킨 "풍선은 날아가고"(1926)

냉전은 서유럽 미술과 러시아 미술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움 가보와 칸딘스키의 바우하우스에서의 활동은 구성주의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서유럽 미술사를 풍부하게 만들었고, 러시아 시골 풍경을 담은 샤갈의 그림들은 지금도 감탄을 자아내며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스탈린 정권에 의해서 매장된 말레비치의 유산은 1960년 이후 서유럽과 미국의 미술에서 미니멀리즘적인 취향의 추상화에서 다시 발굴되었다. 특히 말레비치의 유산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경직성을 깨는 중요한 전략적 무기가 되었다. 구소련의 붕괴와 개방 이후 러시아 미술과 서방의 미술의 동시적 발달은 또 다른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되어 갈 것이다. 개혁 후 러시아 미술사는 재조명하는 서적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특히 구소련 시절에 그 가치에 비해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20세기 초반의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프로젝트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역사란 과거의 죽은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더불어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이다. 개혁 후 20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러시아 미술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최근 세계 2대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에서 고가로 낙찰되는 러시아 작가의 미술 작품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러시아 미술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눈여겨 볼 만할 것이다. "언제나 그들, 러시아인들이 하는 말은 크게 울리고 불꽃이 튄다" 

-이진숙 작가의 위대한 유토피아의 꿈, 러시아 미술사 서문 중에서-

 

책의 서문, 작가 개인의 감정이 아주 진하게 들어나는 글의 이 서문을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누구누구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책을 읽기전 본문의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적은 글이 대부분인 일반적 서문에 비해 이진숙 작가의 책: 러시아 미술사의 서문은 러시아를 소개하는 글로 그저 완벽했다.

그리고 내겐........ 모스크바를 떠나며 정리하는 글로도 그저 완벽했다.

지난 6년의 시간 정착지로 살았던 모스크바에서의 삶을 필사로 마감한다. 너무 많은 생각이 뒤죽박죽 엉키어 무엇으로 결론을 내고 싶은가 내 스스로도 모르겠는 시점에 내 능력의 한계와 정비례하는 고상하고 우아하게 마무리 짓고 싶은 내 욕망이 그대로 들어난다.

지나고 돌이켜보니, 모스크바에서 표출된 러시아에 대한 많은 궁금증, 내 삶의 고뇌와 고민....... 그에 대한 답을 나는 그들의 예술에서 찾았다. 정치와 종교, 경제를 둘러싼 한 민족의 역사는 미술과 음악 그리고 글에 가장 정확하게 남는다. 이데올로기의 그늘에 참으로 많은 것이 가려진 러시아. 나는 그 곳에서 또 하나의 동전을 찾았다.

동전의 뒷 면은 이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는 올가, 나타샤, 타냐, 이리나, 크세니아, 세르게이, 키릴, 샤샤, 알로나, 아나스타샤......... 나의 이 평범한 친구들...... 그 친구들의 아이들...... 그 가족들의 친구들......  그들과의 추억이, 바로 그들이 동전의 앞 면이 된다. 친러파라 불린다 하여도 어쩔 수가 없다...... 내겐 이제 그들이 그저 러. 시. 아 이기때문이다.

또 하나의 애증의 도시 모스크바, 팔이 안으로 굽는 나라 러시아는

이리하여 내 개인의 역사에 무. 탈. 했. 던........ 기억으로 기. 록. 된. 다. 

Goodbye Russia, Thanks Moscow

마르크 샤갈 "생일"(1915)

 

 

 

 

 

'Life > Rus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story of Russian Art  (2) 2019.09.24
리흐테르 in Moscow  (0) 2019.02.23
Suzdal in summer scenery 5  (2) 2019.02.10
Suzdal in summer scenery 4  (0) 2019.02.09
Suzdal in summer scenery 3  (0) 2019.02.05
Suzdal in summer scenery 2  (2) 2019.02.04
Posted by 사용자 벨라줌마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렇게 6년간의 모스크바 생활에 작별 인사를 고하셨군요.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그곳에 계시는 동안 많은 곳으로 여행도 하셨으니, 참으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사실 이 포스팅을 지난번에 한 번 읽었는데, 뭔가 이해 불가한 부분이 있어 오늘 다시 읽었답니다.
    이진숙 작가란 분의 책 서문이 제겐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2019.10.10 01: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세레나가.... 커버린 아이의 모습을 보며... 열심히 살았구나 저도 스스로를 독려합니다. 지나고보니 제 6년간의 모스크바의 삶은 '아기 엄마'로 그저 그 타이틀 하나에도 벅찬 삶으로 그리 살았구나 싶어요. 이제 '아기'는 뗀 그저 엄마이니... 민스크의 삶은 또 조금 다른 삶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나..... 걱정 입니다.

      미술에도 조예가 깊으신 왈리님께서 어려우셨을 책의 서문이 아니라 어쩌면 제 마음의 상태가 고스란히 들어난 글의 맥락이 이해되기 힘듬으로 연결 되지 않으셨을까 감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읽고 또 읽어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이해가 되지 않는걸요? ㅎㅎㅎㅎㅎ 그래도 과감히 'delete'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은...... 후에 이 글을 읽으며 아...... 내 마음의 상태가 저랬었구나...를 느끼고 싶어서 입니다. ^^
      엉망징창의 포스팅 글에 대한 변론으로 괜찮은가요? ^^

      이진숙 작가의 '러시아 미술사'라는 책을 모스크바 삶 초기가 아닌 마무리기에 읽게되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6년이라는 시간을 러시아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저 같은 문외한에게는 진짜 어려울 수 있는 미술사 책이니요. 그래도 서당개 6년, 그 마무리를 해야할 시간에 고개라도 끄덕일 수 있는 내용들이 있어..... 읽고 또 읽으며 행복 했습니다 ^^ 저 4번 읽었거든요 ㅎㅎㅎㅎ

      2019.10.12 15:55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