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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덟 번째 장

벨라줌마 2022. 11. 17. 00:53

88 서울 올림픽이 열린 해에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입학을 한 해 일찍 했기에 3학년이었다. 2학년이던 3학년이던 4학년이던… 나는 사실 초등학교 졸업시기까지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선명하지 못한 기억의 저편에 그나마 흐릿하지만 인상적으로 보이는 단편 중 하나, 텔레비전 화면 속 올림픽의 개막식인지 폐막식인지 비둘기 떼를 하늘로 날려 보내는 퍼포먼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라고 했다.
나쁘지 않은 기억이었다.
인상적이었다는 말이 잘 들어맞는 기억의 단편이다.
시간이 한참 흘러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세계의 도시들을 여행하기 시작하며 난 비둘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광장에 떼로 모여있는 비둘기들을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떼로 그득그득 몰려있는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는 사람들 조차 싫어지게 되었다. 떼로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녀석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 보니 거리를 걷다 마주치는 두서너 마리의 비둘기를 만나게 되어도 몸서리를 치며 가능한 그 녀석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으려 무척이도 애를 쓰는 나를 보게 된다.
예상 불가능한 곳에서 갑자기, 떼로 낮은 고공행진을 하며 나에게 달려드는(것만 같은) 비둘기들에게 이단 옆차기를 쌍 펀치를 날려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곧잘 느낀다. 내 안의 폭력성을 불러일으키는 녀석들은 참… 불행하게도 너무도 작은 몸의 새…
암스테르담 곳곳의 광장에도 비둘기 떼가 모여 산다. 오만상이 찌푸려진다.

떼로 몰려다니는 녀석들에게 오만상을 찌푸리고 이소룡에 빙의하여 현란한 이 삼단 옆차기를 날리고 싶은 명확한 존재, 너무 싫다는 부정적 의사 표현을 단호하게 내뱉는 내게 오늘 아침 이 한쌍의 비둘기는 다른 의미로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아이러니했다.
그들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 그림 같은 풍경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 그 애틋한 그들의 애정씬 때문이었을까?
떼로 몰려있을 때는 오만 지저분한 것들을 물고, 묻히고, 옮기며 먹이에 혈안 된 그 본능에만 충실한 것들이지만 저것들도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그 무리 안에도 그나마 봐줄 만한 것들이 있군…이라는 작은 기대심리가 발동했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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