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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in Vilnius Airport. 본문

Travel/Vilnius

책방 in Vilnius Airport.

벨라줌마 2019. 11. 18. 06:32

나는 책이 가득 차 있는 공간이 좋다. 그 공간이 꼭 서점이라는 이름을 붙인 공간이 아니여도 좋다. 빼곡하게 들어 찬 책을 보유하고 있는 공간이 화장실지언정 책이 가득차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그 공간은 좋다. 전시의 목적이어도 좋다. 지적 허영심이 동한다 하여도 좋다. 술과 담배, 마약이 가득차 있는 공간 보다는 건강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나는 또 나를 위로하기 위해 자기 합리화를 열심히 하는 중이다. 

빌니우스에서의 마지막 날, 빌니우스-뭰헨-트리에스테로 향하는 저녁 비행기를 타야 하니 아침,점심 나절 일정까지 나름 충실히 채우고 공항으로 향했다. 똑똑한 손전화기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 택시를 불러야 하니 삼일간 머문 호텔 데스크에 도움을 청했다. 호텔직원은 호텔과 연계되어 있는 한 택시 회사의 택시를 불러주었고 요금은 10유로라 알려준다. 택시를 타고 10-15분 거리에 위치한 공항에 도착하자 택시기사는 내가 지불하려 꺼내어 든 10유로가 아닌 12유로를..... 불쾌한 얼굴 표정과 함께 당당히 부른다. 쪼잔한 내 심성이 상한다. 2유로에 상한 내 심성에 기름을 부은 택시 기사의 마지막 인사말은 '아리가또'.......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도 아니고........ 반말의 아리가또 란다......... 동양인의 외모를 가진이를 보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니하오'를 외치는 서양인의 외모를 가진 꼬마수준의 이들과의 숱한 조우 속에 싹튼 내 옹졸한 분노, 그 자개바람이 인다.

가방을 받으며 그가 알아듣던 말던 공항 입구에서 큰 소리로 고함치듯 말했다. "실례합니다만 호텔에서 말한 택시 요금은 10유로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어의 아리가또는 일본말을 쓰는 사람에게 사용하도록 하십시요.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그 외침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나는 몇주 후 부킹닷컴에서 보내온 머문 호텔 점수 주기, 리뷰란에 2유로에 상한 내 마음을 고스란히 내보이며 2유로는 작은 돈이지만 2유로 때문에 호텔의 인상, 더 나아가 도시 빌니우스에 대한 인상은 형편없음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시라..... 잘난척이 난무하는 꼴사나운 리뷰를 남긴다........

안다. 수준 이하의 행동을 취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임을...... 이런 내가 책이 가득 차 있는 서점을 좋아한다 말하니...... 아이러니한 인간의 저질 인성을 논할 수 있는 품성이다. 한심하다. 그래도 이리 한심한 나를 위로해준 공간이 작은 규모의 빌니우스 공항 한 편을 책으로 가득 메우고 있던 서점이었으니....... 나는 여전히 나를 잘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이런 내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니 자위하듯...... 수준 이하의 품성을 보인것에 대한 '내 탓 아니고 네 탓', 그 자기합리화의 이유를 찾아 헤매고 있다.   

서점을 기웃거리다 눈에 든 책이 어디서 많이 본 아는이의 책이었다는 것...... 그 아는이는 분명 한국어로 저 책을 썼기에 나도 읽었는데........ 표절시비에 작가 당사자를 포함하여 아주 많은 이들이 혼돈의 시간을 겪은 책이었는데....... 꽤 여러해 전, 우리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서주신 이탈리아 시골 우리 마을, 치비달레 주교(신부)님이 꽤 감동적으로 읽으셨다며 내밀어 보이신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이탈리아어 번역판을 읽으며 알 수 없는 감정의 일렁임이 동요하던 책이었는데.........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리투아니아어 번역판을 만나니 아주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허나 아주 많은 생각중 일번은...... 반. 가. 움 이었다. 나에게 신경숙 작가와 공지영 작가의 많은 저서는 시퍼런 청춘, 그 날 선 시간안에서의 10대, 무모함을 용감함이라 착각하던 20대의 나에게 위로와 배움을 동시에 주는 스승이었다. 세상의 날선 화살이 스승이라 생각했던 그 많은 저서들의 작가에게 날아드는 것을 보며 혼돈의 세계: 숱한 경험이지만 늘 낯설고 늘 적응되지 않는 그 세계를 또 그렇게 마주한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 머릿속은 여전하지만........ 나는 기다림을 선택한다. 아이를 키우며.... 점점 더 겁보가 되어가는 나는 기다림의 미학, 이 보기좋은 미사여구의 고통을 알아가는 나를 위로하려 한다.

지난 주, 내 친구 타냐가 '나 요새 김언수의 '설계자들' 읽고 있어. 모스크바에서 너랑 기생충 같이 못본거 너무 서운했는데 이책도 그 영화의 느낌이 나는데? 너무 재미있네?' 라며 한글로 '설계자들'이 씌여있는 책의 사진과 함께 메세지를 보내왔다. 영문판인지 러시아어판인지 묻지 못했지만 내가 모스크바를 떠난 후 더욱 더 한국 문학과 한국 영화에 관심을 갖는 타냐를 보며....... 그리운 마음이 더불어 우울해진다...... 메세지로 I miss you 라는 짧은 문장 한줄을 보내면 타냐와 키릴의 보물인 아이들, 세레나의 친구인 까차의 사진과 함께 집 앞 풍경 사진, 우리가 함께 자주 가던 모스크바의 공원 사진을 실시간으로 보낸다. 내 모스크비치까 친구들..... 나타샤도 올가도 크세니아도 타냐와 다를 것이 없다. 이 정많은 러시아 여인들인 그들에게 I miss you...... 이 짧은 문장은 모스크바를 떠나 또다시 새로운 정착지의 이방인이 되어 있는, 그녀들의 이방인 친구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을 안기는 연민의 문장이 되는가 보다......

나는 아직 접하지 못한 작가 김언수의 책들은 또 이렇게...... 내 러시안 친구 덕분에 알게되어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오른다. 삶은 아이러니함의 연속이다.

메리 린 브락트 의 하얀 국화 ( Mary Lynn Bracht ' White Chyrsanthemum'). 이 책도 빌니우스 공항 서점의 가판대에 진열된 덕에 알게 된다. 한국의 위안부라는 어려운 소재의 소설이 미국계 한국인의 영어 소설로 2018년 8월 발표되어 전 세계 약 20여개 나라, 각 국의 언어로 출간 되었다는 소개를 인터넷을 뒤적여 알게 된다. 나는 작가의 이력도 이 소설의 출간도 몰랐으니 말이다........

자.랑.스.럽.다. 는 낯간지러운 소리는 하지 않으련다. 다만...... 나는 한국 작가들의 수많은 우수한 저서가 세계 많은 나라의 독자들을 재미와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 넣어줄 것을 감히 예상한다. 수준 높은 번역의 영역이 점점 더 확장되어가는 추세가 분명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저 모든 것이 좋기만 했던 내 빌니우스에서의 여행 마지막 마침점. 택시비로 예상치 못한 거금(?)인 2유로를 더 내고, 택시기사의 '아리가또' 인사말까지 들으니 심히 언짢아진 마음으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으나...... 내 옹졸한 분노, 그 자개바람은 빌니우스 공항 서점안에서 멈춘다.

나는 책이 가득차 있는 공간이 좋다.

나는 책이 가득차 있는 빌니우스 공항이 좋다.

나는 빌. 니. 우. 스. 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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