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Azerbaijan2018. 12. 9. 19:21

2011/12/10 20:36

 

 

이녀석들은 내가 이곳에서 젤루다 좋아하는 미니케익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케익류는 매우 아주매우 달다.
전통적으로 만들어 내는 곳도, 대형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들도
모두 한결같이 그 진한 달달함이,

먹고난 후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다.

케익집의 케익류는 전통의 그것보다는 좀더 외국의 혹 다른나라의 케익류를
모방하였다함이
옳은설명이라하겠다.

모순되게도 내가 좋아하는 이 케익집은 본사가 이스탄불 즉 터키이다.

바쿠에 두 곳의 지점을 두고 있고, 한 곳이 우리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저녁초대를 받는다거나, 누군가를 방문해야 할 때, 무엇을 들고가야 할 경우
난 이집 케익을 항시
이용하고 여직까지 단 한번도 내가 들고간 케익에 실패한적 없었다.

오늘, 장을
본 후 무거운 짐을 들고 낑낑대며 케익을 사겠다고 갔다.
여느때와같이 좋아하는 녀석들을 샀고 돈을 냈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와
바로옆 우체국에 들렀다.
아제르바이잔 상징마크가 큼지막히 찍혀있는,
매우 독특한 디자인,
아제르바이잔에서만 살수있는,
개인적으로 참으로 맘에드는
크리스마스,새해 카드를 사기위해서였다.

돈을 내려고 지갑을 열으니 아까 그케익집에서 받는 거스름돈이 조금 이상했다....
내 지갑에 돈이 정확히 얼마가 들어있는지를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오늘같이 장을 보는 날은 지갑을 여는 횟수가 많다보니 자연스레 기억이 되는 것 같다.
두칸으로 분리되어 있는 지갑의 앞칸은 작은단위의 1,5,10 마나트(이곳의 화폐단위)
뒷칸에는 20, 50, 100 마나트를 분리하는 나는 분명 작은 단위를 넣는 칸에서 10마나트를 꺼내
계산을 하였고 그칸은 10마나트를 꺼냄과 동시에 텅하니 비어있었음을 기억한다.
작은케익하나의 가격은 대략 1마나트 50 혹은 20
케픽 (이곳의 동전단위)
5개를 샀으니 대략 7마나트로 생각했고, 3마나트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따단~~~~~~~~~8마나트가 들. 어. 있. 었. 다.

순간의 망설임이 없었다면 나는 거짓말쟁이이다.

1마나트는 1유로이다.
아제르바이잔이
상적인 이상적인 화폐의 유통, 순환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의 생활환경과 물가, 일반소득층의 생활 수준은 1마나트=1유로의
시스템으로
살기 힘들다. 매우 힘들다.

이이야기는 후에 좀더 구체적으로 꺼내보기로 하겠다.

나에게도 5마나트는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다.
따악 감고 모른척해 아니야 정직하게 더온 거스름돈은 돌려줘야해.
두녀석들의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고 후자를 택했다.

나에게는 후자를 택해야 하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 나는 대한민국 민간외교관이다. 나는 내가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다.

거창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로 외국을 다니는 많은 한국인들은 본인이 상대방에게 처음 만나는 한국인인 경우가 있다.

솔직하게 나는 정말 많았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에서의 경우는 늘상 그렇다.

지나치는 여행객이 아닌 삶을 살고있는 거주인인 나는 이동하는 동선이 거의 일정하다.

동선이 일정하다보니 만나는 사람도 일정하다고 있고, 이곳사람들 역시 전세계 80%이상의 국가 그들의 국민성과 동일하게 남의 집에 숟가락이 몇개인지를 알아야하는 특성상,

나는 도착한 첫날 이미 대부분의 현주민들의 주된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었었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지 두서너달이 지날무렵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무섭게 생각하지 말고 들으라며 자신이 오늘 회사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남편의 회사는 다국적인종이 모두 모여 일을 한다. 함께 일하는 대부분의 외국인은 우리를
포함하여 아제르바이잔어나 러시아어를 할줄 모른다. 그들 중 벨로루시 국적의 부부가 있고
그들은
모국어가 러시아어이다. 부부중 아내인 동료가 그날 아침 남편을 보자마자 전한 이야기이다. 우리 아파트에서 한블록을 돌아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있는 그들, 벨로루시 집에 개인사정이 생겨 남편이 일주일 휴가를 내고 고국에 간지3일째 되는 날이였다. 늘상 이용하는 동네 작은 슈퍼앞,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나온 그녀에게 경찰관이 다가왔다. 안면이 없어도 안부를 주고받는 이유에서인지 안부를 묻더니 남편이 3일째 안보이던데 집에 다니러 갔냐고 하더란다.
분명
모르는 사이이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잠깐일이있어 다니러갔다고 대답했고 이어지는 질문,
당신
동료중에 젊은 유럽인, 아시아부인이 있는, 아시아 여인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를
묻더란다. 한국인이라는 대답과 동시에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고 한다.

다음날 나는 동네수퍼에 들렀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인지 낯설은 동양인에 대한 어색함인지
두달이 지나도록 눈으로만 인사를 전하던 수퍼점원이 갑자기 까레아 외친다.
나는
그날 이후로 동네 청소년들에게 더이상 니하오를 듣지 않게 되었다.

몸에 소름이 돋은 것은 그냥 어느나라사람이냐도 아닌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라는 구체적 질문, 이미 나에 대해 부정확하게나마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번은 집앞 횡단보도, 카레이서를 꿈꾸는, 차도를 포뮬러원 경기장으로 생각하는 이곳 운전자들, 그들중 하나가 나를 칠뻔했고 적반하장도 유분수 갑자기 잘못 하나없는 나에게 고함을 쳐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남성, 운전자에게 고함을 쳐대며 하는 이야기중 내가 이해한 두단어 까레아 그리고 코데스트(남편직장명).

여러생각이 들지 않았다.

솔직히 이러다보니 바른한국인 이미지 보여주기 증상부작용을 앓고있는중이다.

나는 칭찬받아 마땅한 . . . 선진시민의식 실천에 앞장서기를 하고 있고,
한국에
들어가면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중이다.


두번째, 정직이나 선행은 남을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함이다.

이것 역시 거창한가? 그런거 같다……..

이곳에서 나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적게는 정가의 2, 돈이 있어보이는 나라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정가의 5배의 값을 지불하고 . . .

과거형을 쓴이유는 현재는 정당하지 못한 금액을 요구할 화를 내기도 욕을 하기도 하는 것을
시도 중이다. 그닥 먹히는 같지는 않다.

여하튼 내가 있는 소심한 시위는 그들이 그렇다 하여 나역시 같은 방식으로 찾은 방법으로
대응하다 보면 역시 그들과 다른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
몸에 베이게 되어 한때 어글리 코리아라 불리던 고국에 또다시 먹칠을 하게 될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이것 역시 상담을 받아봐야 같다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케익집을 좋아한다. 그곳의 사장님이하 직원들을 좋아한다.

1년여전 처음 그집에 들어간 날을 잊을수가 없다. 기대하지 않고 들어선 그집에 가득 있던
내취향의
케익, 쿠키류. 주간 어글리 아제르바이잔에 힘겨워 하고 있었던 나에게 무척이도
친절했던
사람들. 가끔 포장에 까탈을 부리는 나에게(선물용, 특히 어려운 상대에게 들고가는
케익은
깨끗하고 예쁘게 포장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한번의 찡그림을 보이지 않는
직원들( 이곳에서 친절함을 요구한다거나 혹은 위생에 까탈을 부리고 싶은 경우, 상대와의 아주
깊은 이해관계가 필요하다. 위생을 보는 시각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

그들을 속이고  나도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500마나트도 아니고 5000마나트도 아닌 5마나트였지만 행복하고 싶었다.

돌려주러 다시 드른 케익집, 언어가 통하지 않아 설명을 하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동양여자가 대체 이러나 싶은 눈빛을 느끼기도 했지만, 사홀(고마워) 연신 말하는 그들에게 역시 사홀이라 말하며……짧은 순간이었지만 행복했다. 내가 나간 미친년이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장이하 6여명의 직원 한명은 내진심을 알아주지 않았을까…..
그런
기대를 해본.

 

 

youngchippy 2011/12/10 22:49 R X
모국이 아닌 외국에서, 그것도 관광객이 아니라 '거주민'으로 산다는 것은 흔히들 그저 외국생활 이라며 동경하는 것과는 다르지요.벨라님 처럼 계속 여러 나라를 다니며 살아야 하는 건 또 좀 다를 수 있어요. 그러니 민간외교관 처럼 의무감이나 조심스러움을 크게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하죠. 내가 이들에게 보여지는 코리안의 대표 이미지가 된다는 걸 아니까.
근데 벨라님 같지 않은 사람들이 사실은 더 많을 걸요? 한국도 이젠 제법 잘산다며 거들먹거리고 안하무인, 제 세상 만난듯이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을 지도 모르겠네요.
어느 나라 사람이건 예의를 알고 교양(?)을 갖춘다면 어디서건 좋은 향기를 남기겠지요. 원래 사람은 환경만 바뀐다고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벨라줌마 2011/12/12 14:46 X
좋은향기....정말 적절하여 마음에 닿는 단어입니다.
그런 향기를 풍기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노력해야겠지요?
WallytheCat 2011/12/11 02:00 R X
맛나게 생긴 케잌 뒤에 숨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낯선 곳에 사는 것이 쉽지 않지요?
사람들의 뒤를 캐는 듯한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제 머릿속이 다 쭈삣거리며 복잡해지기까지 하네요.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사이 사이 숨어 있어, 세상은 또 살 만한 곳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스름돈은 잘 돌려 주셨어요. 칭찬 마구마구 해드립니다.
벨라줌마 2011/12/12 14:48 X
왈리님도 너무.. 더.. 잘 아실거라 생각되요.
네 맞습니다. 좋은사람들이 더 많기에 살만하다라는 희망,기대를 하며 살수있는거 같습니다.
헤헤 칭찬받아 행복해요~
美의 女神 2011/12/11 09:38 R X
저두요! 참 잘 했어요!!! 도장 마구 마구 찍어 드리고 싶어요. 일단은 내 맘이 편하다는 것. 두고 두고 찝찝할 뻔 했는데. 그들도 알겁니다. ^^
벨라줌마 2011/12/12 14:50 X
ㅋㅋㅋㅋ아싸아...저 미의여신님 칭찬에 늘 부~~웅
뜨는거 아시죠?
분명 진심은 통하겠죠?
우리함께 2011/12/12 09:37 R X
생각을 많이 하고 사시네요.
아무래도 외국생활을 하려면 그럴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할 때도 그러한데 주민으로 살아가야하는 사람은 정마 많은 것에 신경을 써야겠군요.
5마나트로 얻은 행복은 돈으로 바꿀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벨라줌마 2011/12/12 14:52 X
네~~~ 돈으로는 바꿀수도 살 수도 없는 좋은세상이 모두에게 왔으면 참 좋겠다...늘 그런 희망을 갖고 살아가요....
너도바람 2011/12/12 10:56 R X
아주 오래전 이야기. 육아휴직을 내고 집에 있었지요.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 또래 엄마 두엇하고 안면을 트고 지냈어요. 그 중 한 엄마 친구가 연락않고 친구집에 왔는데, 경비 아저씨가 그 엄마가 마실 다니던 열가구를 정확히 찍어내 인터폰을 해서 찾아냈다는 사실. 그 때 좀 무서웠지요.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 비슷한 시스템 안에 살고 있을거예요. 그래도 이스탄불에 본사를 둔 케잌집이 있는 것은 참으로 행운입니다. 저도 사홀...

역주행이 기본인 중국인과 성전에 참여하듯 목숨 걸고 운전하는 아랍인, 카레이서같은 아제르바이잔 사람 중에 누가 최고일까요?
벨라줌마 2011/12/12 14:55 X
아.....소름이 쫘악......경비아저씨 전직 요원이셨나봐요 ㅋㅋㅋ

ㅋㅋㅋㅋ 중국인도 아랍인도 운전에는 정말 터프 그 자체군요....음.....모두 보질 못해 비교하기 어려우나 역주행에 목숨건 카레이서들...여기 죄다 있어요...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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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벨라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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