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ogo tra credenti e non credenti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서문
혁명은 교황이 선택한 프란체스코(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 Francesco d'assisi, 1182~1226. 그리스도교의 성인으로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13세기 유럽의 사상,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젊은 나이에 '작은형제단'을 조직하여 청빈, 정결, 복종등을 규칙으로 한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예수의 교훈을 실현하기에 전력했으며, 여기에서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비롯되었다. 모든 생물을 형제라 부르고 산천초목을 자매라고 부르며 그리스도교를 널리 전도하였고, 예수와 같은 성흔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라는 하나의 이름에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많은 의무를 지우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지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았던 성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어떤 교황도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이름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권력의 사치스러움과 호화로움을 버리고, 청빈과 겸허함을 갖추고 평화와 유대 속에서 살 것을 호소하며, 불의를 고발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야심 찬 기획이자 프로그램이며, 신자들에게는 깊은 신앙심을 실천하는 행위이고 심지어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언의 말이기도 하다.
신앙심과 비종교적인 시각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였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Jorge Mario Bergoglio 추기경은 2013년 3월 13일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프란치스코는 그가 택한 이름으로, 프란체스코의 스페인어 철자와 발음을 따른 것이다. 현재 교황을 지칭할 때는 프란치스코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지칭할 때는 프란체스코로 표기한다.)과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사이에서 이루어진 이 대화도 교황이 제시하는 새로운 전망을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라 레푸블리카> 지의 설립자인 스칼파리는 신앙심과 비종교적인 심성 사이, 유한한 권력과 영적인 증거 사이, 초 자연적인 것을 믿는 사람이 내세우는 근거들과 자기 운명을 스스로 실현하려는 실존적인 노력에 모든 것의 이유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합리적 이성 사이의 경계 지점에 대해 수시로 질문을 던져 왔다. 이 경계 지점을 탐사하는 동안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예수라는 이름의 인물에 대해서도 자주 거론했는데, 의심을 떨치지 못하는 무신론자로서 예수가 역사에 남긴 흔적을 더듬는 데서 스스로 멈췄다.
이러한 소망과 의식 덕분에 이 무신론자 언론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관심을 가졌고, 교황이 임기 초기에 보여 준 인상적인 모습에 자극을 받아 가슴속에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품게 되었다. 그 질문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느 정도까지 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 교회와 신도들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서로 대립하고 있는 신자들과 무신론자들의 관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베르골리오는( 이 책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칭할때 베르골리오, 혹은 로마의 대주교 등 다양한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교황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시각, 토론에 대한 취향, 현대세계의 모순에 일갈을 던질 수 있는 역량 덕분에 세속 엘리트층을 대표하는 스칼파리의 질문에 응할 수 있었다. 그는 스칼파리의 질문이 진지하고 보편적인 관심을 담고 있음을 인지하고, 마치 개인적인 답장을 쓰듯, 규범적이거나 교조적이거나 기계적 답변을 하는 대신 진정성을 담아 열린 마음으로 글을 썼다. 이 답변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와 공동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공유한 두 진영 사이의 진정한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문서를 접하게 되었다. 교황이 언론인에게 편지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교황이 신앙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들의 양심의 가치에 대해서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또한 예수라는 인물의 행적과 더불어 그의 강생과 부활을 되새김으로써, 계율의 교회에서 복음의 교회로 돌아가려는 의지와, 단죄보다는 관용을 호소하는 교회의 본연의 임무를 되새기려는 의지를 담았다는 점도 무척 중요하다.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해 교황이 왜, 그리고 어떻게, 교회가 가지고 있는 '단죄의 권능'을 버리려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치켜들고 있는 십자가는 진리를 손에 쥐고 있는 자들의 권위나 배타적 특권의 상징이 아니라, 진리의 품에 안긴 자들, 그리고 그 진리를 남에게 건네주고 또 남의 진리를 인정하는 자들의 사랑의 몸짓인 것이다. 주교좌에 높이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근엄한 자세를 거부하는 한편 자신의 신앙심을 확신하고 주위를 바라보고 자신의 목소리에서 단죄의 어조를 떨쳐 버림으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은 폭넓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리스도교를 전통적인 가치들의 낡은 창고로 여기거나(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그리스도교가 가장 보수적인 정치적 장터에서 주요 논제로 자주 활용된다.), 그리스도교를 신앙이라기보다는 일상에서 참조해야 할 문화적 교양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최초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보기에 전혀 교조적이지 않고 독단적이지도 않아서 두루 인기가 좋은 교황은 주관 없는 나약한 인물일 따름이다.
실제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진실과 대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 달리 말해 인간에 대해 깊은 관심을 품고서 교리보다는 삶에서 힘을 얻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신앙심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다. 신앙심이 견고하다면 놀랍고 혼란스러운 일들을 기꺼이 끌어안고 경험 할 수 있으며, 질문을 두려워하는 대신 온갖 물음에 자신을 맡길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우리 모두가 느끼기 마련인 두려움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의 권위를 새롭게 회복시켰다. 더욱이 신문 지면상에서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교황과 무신론자 사이의 이 대화는 단지 말을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또한 실천적인 행동인 것이다.
-에치오 마우로(<라 레푸블리카> 발행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