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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Yerevan

The pain of Armenian

벨라줌마 2018. 12. 20. 01:47

2016/07/09 03:29

 

나는 지금부터 조금 힘들고 많이 어려운 주제로 '나에게 안식을 준 예레반' 나의 여행 일기 한 꼭지를 써보려고 한다.

역사의 비극은, 내전에서도 분분한 의견 대립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려 노력한다. 하물며 내전의 역사도 그러한데...... 세계대전 혹은 다른 두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주제로 이야기 하는 입장, 그 대립의 칼은 얼마나 더 시퍼렇고 이기적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련다.

예레반 여행전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생각해 둔 곳은 사실 한 곳 이었다.

바로 'Museum of the Armenian Genocide'

일단, 대단한 역사의식에 고취되어 학구열을 불태우기 위함이라던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이 작은 한 몸 보태어 보자는 박애주의자 선언을 위한 시발점 이라던가 라는 거창한 이유가 결단코 아님을 이 연사 힘차게 힘차게 고한다.

아르메니아 양민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것은 아제르바이잔 거주시절 만난 친구들을 통해서였다. 바쿠 거주 당시, 일과 후 혹은 주말이면 늘 함께 몰려다니며 먹고, 마시고, 토론하고, 여행을 계획하며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던 친구들...... 현지 생활 적응 방법을 유머로 승화시켜 고된 타국 생활 웃음으로 독려하던 지기들과 술자리에서 우연히 나온 주제 '학살(Genocide)'. 이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학살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만행(Brutality)은 생각보다 참으로 많았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위치(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라 아르메니아에도 그 처참한 과거에 울부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오랫동안 마음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이스라엘 출신 영국 국적 친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출신 친구들도 나도 서로의 고국에도 그런 슬픈 역사가 있다고 토하며 무거운 술잔을 오랜시간 기울였던 기억도 난다.

그때, 혹시 예레반에 함께 가게 되면 꼭 학살 추모관에 들려보자고 했던 것이 이번 예레반행을 준비하며 살포시 떠올랐다. 그 친구들과도, 엘리스를 데리고 잔혹한 과거사를 들여다봐야하는 것이 선뜻 내키지는 않는다는 나타샤와도 함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혼자한 걸음이 나에게는 오히려 가벼웠다.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

1894∼96년과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5∼16년 당시 이슬람 민족주의자들이 오스만제국 내의 동부지역에 거주하던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사건을 말하며, 일반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학살사건을 지칭한다. 19세기 말 아르메니아인들이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던 당시, 러시아가 남하정책을 펴며 남카프카스를 점령하자 1877년 러시아와 오스만제국 간에 전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역의 북동부까지 점령한 것이 대규모 학살사건의 시작이 됐다. 러시아-투르크 전쟁을 계기로 독립을 희망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은 러시아를 지지하며 1894년 오스만제국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나톨리아 동부에 거주하던 이슬람주의자와 기독교계인 아르메니아인 간에 충돌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과 탄압이 이뤄졌다.
두 번째 학살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5~16년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강제 이주를 단행하면서 벌어졌으며, 이는 현대사의 첫 조직적 학살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1914년 독일ㆍ이탈리아ㆍ오스트리아의 3국동맹과 영국ㆍ프랑스ㆍ러시아의 3국협상 간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만제국은 러시아가 속한 연합국에 맞서기 위해 3국동맹에 가담하였다. 이때 러시아 접경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혁명세력이 오스만제국을 공격하고 1915년 영국군이 영토를 점령해 오자,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 아르메니아인들을 이라크ㆍ시리아ㆍ팔레스타인 등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오스만제국은 아르메니아인들을 고의적으로 추위와 굶주림ㆍ질병 등으로 죽게 하거나 학살하였다는 주장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스만 제국 현 터키측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아르메니아인 집단살해에 대한 견해는 긍정파와 부정파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따라서 집단살해를 둘러싼 역사적인 사실의 규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인 강제 이주가 시행되면서 수많은 아르메니아인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을 현대의 첫 조직적 집단살해사건으로 인정하는 견해가 대다수이나, 터키 정부에서는 이를 강제이주에 따른 희생이라고 주장하면서 집단살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집단살해를 부정하는 터키 측에서는 희생자가 대부분 아르메니아인인 것은 전시 상황에서 최전선의 혼란으로 인한 불행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살해된 사람은 전투원이나 러시아와 내통한 스파이뿐이며, 4월 24일 최초의 희생자도 거기에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문제는 아르메니아 과격파의 테러로 비롯된 반(反)아르메니아 감정의 결과로서 발생한 현대적 민족 문제라고 한다.

구미(歐美)에서는 아르메니아인을 동정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각국에서 아르메니아 로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의회에서 비난 결의를 행했던 나라도 있고, 아르메니아인 집단살해가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아르메니아는 터키령으로 되어 있는 아르메니아인 거주 지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이 문제는 영토 문제를 내포하는 정치 문제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터키 영토의 옛 아르메니아인의 거주 지역은 쿠르드인이 대부분 살고있는 쿠르디스탄의 한 부분으로서, 쿠르드족 문제도 관계있다. 그리고 2012년 1월 23일 프랑스 의회는‘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부인 금지법' 을 통과시키면서 양국간 갈등이 고조되었으며 터키는 이에 정치, 군사 관계를 중단시켰다.

<위키백과>

참으로 재미없는 '욕심쟁이들의 그렇고 그런 옛날 이야기'이다. 참으로 재미없는 욕심쟁이들의 그렇고 그런 다툼의 희생은 왜 꼭 무고한 사람들이어야만 할까? 무고한 사람의 절반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전쟁에 강제 징집이 되고 남은 절반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참하게 짓밟히고....아이들과 노인들은 힘없이 저항할 틈도 없이 죽음의 상황에 내몰린다.

나는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을 웹서핑 하다...... 견해의 차이가 명확하여 (개인적으로)당황스러운, 꼬이고 엮인 역사가 현세에 남긴 위대한 선물(?)을 엿볼 수 있는 포스팅을 만났다. http://themesaytour.tistory.com/147

아르메니아 여행기를 올린 평범한 포스팅이다. 학살 추모관을 다녀온 것을 포스팅했고 자신의 소견을 적어 글을 썼다. 글을 올린 날짜는 2010년 11월인데.... 최근까지도 댓글난이 시끌시끌하다.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은 이 세상에서 늘 벌어졌었고 또 벌어지고 있는 수 많은 만행의 뻔한 결과..... 정치적 싸움에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의 등만 터지는....... 세드스토리다.

지난 6월 25일, 예레반은 또 한번 이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학살 추모관 방문 때문이었다.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43682&path=201607

내가 영어를 알아 들을 수 있는 것.....오랜만에.... 매우 감사했다. 추모관에 들어서, 데스크 직원에게 혹  이 추모관 전시실에 있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만한 녹음 헤드폰이나 가이드 요청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헤드폰은 아직 준비 되어 있지 않고, 지금 영어 가이드 한 그룹이 시작 길에 올랐으니 함께 하라고 알려준다.

나는 매우 솔직하게....... 가이드 길 내내 흐르는 눈물.... 그 주책맞은 내 감정에 혼쭐이 났음을 고백한다..... 추모관은 40여개의(정확한 숫자가 기억나질 않는다) 부분(section)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중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 가이드의 모든 설명이 끝난 후에 홀로 다시 한번 들러 긴 호흡을 내뱉게 만든 섹션을 내 메모장에 끄적 끄적여 놓았다.

나는 만 3세인 한 아이의 엄마이고 여성이다. 이 두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기에....... 어떠한 반대적 입장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민족을 두둔하고 잘못된 과거의 사건을 무조건 변호하는 일에 앞장서는, 비범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있다면 불쾌한 감정을 내보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야욕을 앞세우는 소수의 지도층이 벌이고... 모든 것을 잃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평범한 우리가 뒷 수습을 하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말이다. 아이러니한 우리네 인생....

Section 21, Woman and children as victims of the Genocide :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 남겨진 여성과 아이들의 운명은 우리 모두가 예상 매우 가능하다. 오스만 제국의 지도층은 시리안 사막으로 끌려갔던 아르메니아인 중, 종교를 개종하는 것을 끝까지 거부한 14명을 공개 처형 시킨다. 그리고 참으로 잔인하게도 '크리스찬으로 명예롭게 죽기' 의 길을 유도한다. 바로 예수가 죽은 것과 같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를 말이다. 사막 한 가운데 14개의 십자가를 설치하고 여성들을 매달아 죽인다...... 그 곳에서 천운이 움직여 탈출할 수 있었던 한 어린 소녀가 있다. "Aurora Mardiganian" 아우로라의 이야기를 더불어 학살 사건의 개요를 서술하여 책으로 출간했다.

Section 22, Forced conversion and turkification : 오스만 제국의 지도층은 전쟁이 만든 아르메니아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설립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오스만 제국의 아이들로 키운다. 부유한 집안으로 입양이 된 아이들은 최고의 환경에서 오스만 제국의 교육을 받고, 고아원에 남은 아이들 역시 평범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언어와 문화, 역사를 배우며 자란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들은 거부하기 힘든 형제의 나라인 셈이다.

Section 33, Orphans of the Genocide : 국가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입장에 처한 수 많은 아이들은 결국 세계 이곳 저곳 도움의 손길이 있는 곳으로 보내졌다. 당시 기록을 명확하게 남길 수도 전문적인 기관을 통한 것도 아닌 상황의 아이들은..... 자신의 신분과 출신이 어디였는지도 모른체 자랐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겠지만 그 아이들이 당신의 조상이고 가족이며 친구일 수 있는 확율은...그리 낮지 않다.

아주 혹시, 내 형편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포스팅을 우연히 지나가다 읽고, '마음의 준비'를 하여 예레반,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관을 둘러보려 하는 객이 있다면 제발 그러시지 말라고 청하고 싶다. 마음의 준비라는 것: 혹시 욕할 준비, 화를 낼 준비, 울 준비, 내 민족의 아픈 역사와 오버랩 시킬 준비 같은 것 말이다.........

힘들지만 아픈 사건의 역사는 담담하게 받아 들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대의 과오, 혹은 우리의 과오가 남긴 그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무고한 죽음을 희생 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 위로하기를 소망한다면 누군가의 탓을 한다거나, 복수의 칼을 간다거나 하는 일차원적 자세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치적인 의견이 분분한 이 마음 아픈 과거 이야기......

아르메니아 학살에 희생되어진 무고한 고인들의 넋을 이 포스팅을 빌려 위로한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2014년 8월 14일 한국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의 청화대 연설문 중

 

 

WallytheCat 2016/07/10 01:50 R X
인종 간의 끔찍한 학살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 틀림없으니 그것이 더 큰 비극 아닐까 싶네요. 일부러 그곳에 들러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 준 벨라줌마님의 마음이 큰 메아리가 되길 바래요. 프란체스코 교황의 말씀도 가슴 깊이 와 닿고요. ㅜㅜ
벨라줌마 2016/07/11 17:00 X
반복되고 있는 비극의 역사 앞에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우리가 참 가엽다는 생각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비범한 인물이 더 많이 배출되기를 기도해요. 이런 지도자를 둘 수 있다는 것은 '무기력함'이라는 이 속수무책의 상황 앞에 실낱 같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씨앗이 되니 말입니다 ^^
얄리얄리 2016/07/10 07:20 R X
뉴저지 포트리 법원앞에서 5개의 학살 추모비가ㅏ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르메니안 학살, 나치의 유대인 학살, 미국원주민 학살, 일본의 성노예 희생자.. 또 하나는 생각 나지 않지마. 아마도 미국 흑인노예 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아서 얼마나 아르메니안 학살이 끔찍했나를 알 수가 있지요.
벨라줌마 2016/07/11 16:46 X
안녕하세요 얄리얄리님 ^^
5개의 학살 추모비를 세운 포트리 법원의 멋진 뚝심!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정치적인 상황 앞에...... 소녀상을 철거까지 해야하는 우리의 현실은 심장을 자꾸만 더 딱딱해지게 만드니 말입니다. 심장이 뜨거운 사람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얄리얄리 2016/07/13 07:34 R X
Hackensack이네요. 포트리가 아니라요. 죄송
벨라줌마 2016/07/13 15:50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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